박근혜 정부 당시 정보기관 특수활동비를 청와대에 상납한 혐의를 받고 있는 전직 국정원장 3명이 항소심에서 1심보다 낮은 형을 선고받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들이 상납한 특활비 성격을 ‘뇌물’이나 ‘국고손실’로 보지 않고, 단순히 돈을 ‘횡령’한 것으로 판단했다.
서울고법 형사3부(부장 조영철)는 11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등 혐의로 기소된 남재준(74) 전 국정원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함께 기소된 이병호(78) 전 국정원장과 이병기(71) 전 국정원장의 형량도 각각 3년 6월에서 2년 6월로 감형했다. 남 전 원장은 국정원 특활비로 배정된 40억원 중 매달 5,000만원씩 6억원을, 이병기ㆍ이병호 전 원장은 각각 8억원, 21억원을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 갖다 바친 혐의를 받고 있다.
재판부는 “독버섯이 사람에게 치명적인 중독을 초래하듯이, 국정원 자금이 정치권력을 타락시켜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꾸짖으면서도, “직무와 관련해 편의 제공을 기대하고 대통령에게 특수활동비를 줬다고 볼 증거는 전혀 없다”며 검찰이 기소한 뇌물공여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은 “국고를 횡령하는 불법을 감수하면서까지 특활비를 전달한 것은 거절하기 어려운 대통령 요구가 있었다는 사정만으론 동기를 이해하기 부족하다”면서 “포괄적 편의나 최소한 국정원 및 자신에 대한 불이익이 생기지 않게 하려는 기대가 수반됐을 가능성을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재판부는 “국정원장들을 회계관계 직원으로 볼 수 없다”며 특가법상 국고손실죄도 성립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특가법상 국고손실은 회계관계 직원이 국고 등을 횡령했을 경우에만 처벌할 수 있으며, 손실액이 5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1억~5억원이면 3년 이상의 징역을 받도록 규정돼 있다. 국고손실 혐의가 인정되면 일반 횡령죄(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보다 훨씬 센 형량을 받게 되는 셈이다. 앞서 1심은 세 사람이 실질적으로 회계 관계 업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다고 보고 국고손실 혐의를 인정했다.
이번 판결은 박근혜ㆍ이명박 전 대통령의 청와대 상납 국정원 특활비 관련 항소심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앞서 특활비 상납 관련 재판에 넘겨진 두 전직 대통령과 김성호ㆍ원세훈 전 국정원장 모두 1심에서 국고손실죄가 인정됐고, 이 전 대통령이 원 전 국정원장으로부터 전달 받은 10만 달러에 대해서는 뇌물수수 혐의까지 인정됐다. 1심에 불복해 항소한 이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7일 항소심 재판부에 “국정원장은 회계관계 직원이 아니다” “회계관계 직원을 지나치게 넓고 추상적으로 규정해 구성요건을 명확히 하지 못한다”면서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해달라는 의견서를 낸 상태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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