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허송세월하다 벼락치기로 끝낸 심사
비공식 기구 소소위 밀려 ‘허수아비 노릇’
예산소위 복수화로 심사 나눠 꼼꼼이 해야
2014년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예산안 처리를 위해 물리력을 행사하거나 새해 1일까지 아슬아슬한 줄타기 협상을 벌이는 일은 없어졌다. 하지만 문제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우선 예산안 처리가 갈수록 늦어지고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날림심사와 법정시한(12월2일) 안에 처리한다는 명분으로 밀실서 하는 짬짜미 심사가 문제다. 전문가들은 비공식 기구인 소(小)소위로 인해 사실상 무력화된 국회 예산결산특위의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조금씩 부활하는 지각 처리 관행
선진화법에 따라 예산안 심사 기한(11월 30일) 전까지 합의를 하지 못할 경우 정부 원안이 본회의에 올라가는 자동부의제가 도입되면서 매년 연말 빚어졌던 여야의 극한 대립은 줄었다. 하지만 갈수록 예산 처리 시기가 늦어지고 있다.
실제로 올해 예산안은 선진화법 도입 이후 가장 늦은 12월 8일 처리됐다. 지난 4년간 기한 내 처리된 건 선진화법 시행 첫해인 2014년(12월 2일)이 유일하다. 2015년과 2016년엔 12월 3일, 2017년엔 12월 6일에 처리됐다.
올해의 경우 예산안을 볼모 삼아 선거구제 개편을 요구한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에 밀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예산안 합의에 실패했다면 정기국회 폐회(9일) 전 처리도 어려울 뻔했다. 일각에선 12월 임시국회를 다시 열어도 여야 간 이견으로 초유의 준예산 사태로 가는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왔었다. 국회의원들이 선진화법을 무력화시키는 위법 행위에 조금씩 무뎌지고, 이게 관행으로 굳어지면 앞으로도 법정시한 내 예산안 처리는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예결위 패싱 막으려면 예결소위 복수화가 해법
지각처리보다 더 큰 문제는 ‘예결위 패싱’이다. 올해는 예산소위 구성이 늦어져 심사기간이 예년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이마저도 잦은 파행으로 제대로 심사를 진행한 날은 1주일도 채 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세부적인 증감액 심사는 소소위로 넘어갔고, 예결위는 허수아비 노릇을 한 셈이 됐다.
예결위 기능 강화를 위해선 우선 예산소위 복수화가 대안으로 떠오른다. 현재는 예산소위가 파행을 겪으면 예산안 심사가 전면 중단되고, 심사 기일을 늘릴 수 없다 보니 자연스럽게 날림 심사로 이어지는 구조다. 또 소위 인원은 15명으로, 10명 정도인 다른 상임위 법안소위와 비교하면 5명이 더 많다. 많은 인원 탓에 의원 개인당 질의 시간이 줄어 사업 적정성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는다.
하지만 소위를 복수로 늘리고 심사 분야도 나눈다면, 지금보다 깊이 있는 심사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경제ㆍ사회ㆍ행정 등 분야별로 나누고 해당 예산소위를 두는 것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인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각 상임위에서 심사 결과를 올려도 예산소위에서 다시 논의하니 상임위 차원의 논의는 의미가 없다”며 “소위를 복수로 두면 상임위 논의와도 연계할 수 있어 심사가 한층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결위 상설화도 해법으로 제시된다. 지금처럼 1년 임기에 타 상임위와 겸임하는 특위 체제에서는 의원 개개인이 예산 전문성을 쌓기가 힘들다. 하지만 예결위를 상임위로 전환하면 예산과 관련된 연중 수시 업무보고와 모니터링이 가능해져 지금보다 심사에 내실을 기할 수 있게 된다.
예결위를 무력화시키는 소소위에 대한 견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밀실심사를 막기 위해 소소위에서 합의를 하더라도 예결위 의결을 거치게 하자는 주장이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11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소소위는 법적인 근거 없이 편법으로 운영됐다”며 “여야 합의가 이뤄진다면 반드시 예산소위와 예결위 전체회의 의결을 거치도록 절차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예산안 심사 기간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보통 예결위의 본예산 심사는 국정감사 이후인 11월부터 진행되지만, 국회가 마음만 먹는다면 9월부터 심사에 착수할 수 있다. 현행법상 예산안 국회 제출 시기는 회계연도 개시 120일 전이기 때문이다. 통상 10월에 실시되는 국정감사를 정기국회 전인 상반기에 실시하면, 정기국회 기간을 온전히 예산안 심사에 쓸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회 예산 심의활동을 국민이 감시할 수 있도록 ‘옴부즈맨 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있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은 “실질적인 감시와 견제를 통해 예산심사 참여 기관의 긴장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류호 기자 ho@hankookilbo.com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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