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배층이 피지배층을 괴롭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도량형을 속이는 것이다. 지방 관리들이 세금을 걷을 때 부피나 무게를 속여 징수하면 재물을 쉽게 착복할 수 있다. 이를 감시하기 위해 조선시대의 암행어사는 마패와 함께 놋쇠로 만든 측정도구인 유척(鍮尺)을 들고 다녔다고 한다. 관료나 귀족이 일부러 속이지 않더라도 지역마다 또는 왕조나 정부마다 도량형이 다르면 사회 혼란도 커진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뒤에 가장 먼저 도량형을 통일한 것도, 갑오개혁 때에 도량형을 혁신한 것도 이런 혼란을 줄이기 위함이었다. 도량형을 둘러싼 수탈과 혼란은 18세기 말의 프랑스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대혁명이 일어난 뒤 새로운 도량형을 도입하는 일은 가장 시급한 일 중의 하나였다. 1791년 프랑스 아카데미는 파리를 지나는 사분 자오선(지표면을 따라 북극과 적도를 잇는 선)의 1,000만 분의 1을 길이의 기본단위로 제안했다. 그 명칭은 ‘미터’였다. 1889년 제1차 국제도량형총회에서 백금과 이리듐의 합금으로 만든 미터원기의 길이를 1미터로 정의했다.
금속합금으로 만든 미터원기는 주변 환경에 따라 그 길이가 달라질 수도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60년 크립톤 원자를 이용해 미터를 새로 정의했다. 크립톤86 원자가 진공 속에서 방출하는 주황색 빛의 파장의 약 165만 배가 새로운 1미터의 정의였다. 이 정의는 자연표준으로 정한 미터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파리 자오선도 일종의 자연표준이라 할 수는 있으나, 지구라는 행성이 이 우주에서 특별하거나 근본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진정한 자연표준이라 할 수 없다. 반면 원자가 방출하는 빛의 파장은 미시세계의 기본원리인 양자역학의 결과로 정해진다. 1983년에는 미터의 기준이 광속으로 바뀌었다. 진공에서 광속은 초속 약 3억(정확히는 299,792,458) 미터이므로, 진공에서 빛이 약 3억 분의 1초 동안 이동한 거리를 1미터로 정의할 수 있다. 광속은 상대성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자연 상수이다.
시간의 단위인 초는 1967년 세슘133 원자가 방출하는 특정한 빛의 진동수를 이용해 정의되었다. 물론 자연표준이다. 또 다른 중요한 척도단위인 질량은 아직까지 자연표준이 아니다. 1889년 제1차 도량형총회에서 임의로 제작한 금속 합금 원기둥인 ‘킬로그램원기’의 질량을 1킬로그램으로 정의한 뒤로 변함이 없었다. 덕분에 지난 130년 동안 온갖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몇 년에 한 번은 각국이 나누어 갖고 있는 복제원기를 고이 모시고 파리에 가져가 비교용 복제원기와 비교해야만 했다. 뿐더러 킬로그램원기와 복제원기들의 질량차이가 계속 커졌다. 자연표준으로 킬로그램을 재정의하기 위한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 바로 한 달 전이었다. 지난 11월16일 국제도량형총회에서는 플랑크 상수를 이용해 킬로그램을 다시 정의할 것을 결의했다. 플랑크 상수는 미시세계의 불확실한 정도, 또는 미시적인 물리량의 불연속적인 정도를 나타내는 값으로 양자역학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상수이다.
우주적인 규모에서 생각해 보면 자연표준이 왜 중요한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만약 이 우주 어딘가에 우리만큼 고등한 외계지적생명체가 있다면 그 외계인도 우리와 똑같은 1미터와 1킬로그램을 정의할 수 있다. 적어도 우리가 아는 한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은 우주 어디서나 적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샘 킨이 ‘사라진 스푼’에서 지적했듯이 자연표준으로 정의한 단위는 이메일로 (사람 사이든 외계인과든) 그 정의를 주고받을 수 있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킬로그램원기로는 불가능하다. 만약 우리가 지구를 버리고 다른 행성에 정착해서 지금의 도량형을 다시 재건한다고 생각해 보자. 미터원기나 킬로그램원기를 고이 간수하는 것보다 자연 상수의 값을 정확하게 기록하는 쪽이 훨씬 효율적이다. 그땐 우주 어디서나 똑같은 자연 상수의 보편성이 무척이나 고마울 것이다. 이처럼 자연표준은 디지털 혁명 시대와도 궁합이 잘 맞을뿐더러, 인류문명의 보존과 재건에도 유리하다.
자연표준으로 정의된 단위의 숫자들은 모두 우리의 일상생활과는 거리가 멀다. 도량형 단위는 인간을 위한 척도임에 반해 자연표준으로 이용하는 자연 상수들은 우주의 근본원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이상한 숫자들을 볼 때마다 광대한 우주에서 우리 인간이 얼마나 덜 근본적이고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가 새삼 깨닫곤 한다. 스스로 아주 대단한 존재라 여기며 자만심이 충만한 호모 사피엔스에게 이 숫자들은 겸손함을 가르쳐주기에 충분하다.
암행어사는 유척을 하나 더 들고 다녔다고 한다. 형벌도구의 규격을 재기 위함이었다. 사법농단의 주역들이 줄줄이 법망을 빠져나가고 회계를 조작한 1등 기업이 퇴출되지 않는 현실을 보면 제 편한 대로 기준을 바꿔 사리사욕을 챙기는 인간의 탐욕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나보다. 우리 우주에 또 다른 자연 상수가 있다면 21세기 대한민국에 필요한 유척을 다시 만들고 싶다.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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