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조작 혐의 외환 딜러 30명에 “경제 파탄죄” 징역 20년 선고
금 사재기 사건엔 사형 집행도… “부패 정권에 대한 분노 전가” 지적
이란 사법부가 ‘환율 조작’ 등으로 막대한 이득을 챙긴 경제사범들에게 가혹한 형벌을 내리고 있다.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 재개 이후 악화하는 경제 상황을 틈타 자신의 배만 불리는 세력을 단죄한다는 명분이지만, 죄질보다 훨씬 무거운 처벌을 가한다는 점에서 이들을 희생양 삼아 대중의 분노를 잠재우려 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최고 종교지도자가 국가수반이자 사법부ㆍ입법부도 장악하는 이란의 신정(神政)일치 체제를 감안하면, 결국 정부가 사법부를 앞세워 ‘부패사범 응징’ 방식으로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것이다.
9일(현지시간) 중동 전문 매체 ‘미들이스트아이’에 따르면 이란 이슬람혁명법원 내 ‘반(反)부패 특별재판소’는 뇌물수수와 횡령, 경제 파탄 등 혐의로 기소된 외환 딜러 30명에게 징역 20년씩을 선고했다. 골람후세인 모흐세니에제이 사법부 대변인은 피고인들에 대해 “이란 국적 29명, 아프가니스탄인 한 명”이라고 설명한 뒤, “투옥된 다른 이들도 벌금형과 채찍형을 선고받았고 부당이득은 압류 조치됐다”고 덧붙였다.
반부패 특별재판소는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국가 경제를 약화시키는 경제부패 사범을 엄단하라’는 명령에 따라 지난 8월 신설된 법원이다. 올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제재 전면 복원 전후로, △리알화 가치 65% 폭락 △달러ㆍ금화 수요 급증으로 암거래 성행 △물가 폭등 등 경제적 혼란이 이어지자 ‘부패범죄도 국가안보를 침해하는 중대 범죄’로 규정하며 당국이 내놓은 긴급 조치였다. 여기서 내려진 판결에 대해선 감형이나 가석방이 불가능하고, 사형 선고 외에는 피고인이 상소할 수도 없도록 했다. 경제 사범들에겐 ‘저승사자’나 다름없는 법원인 셈이다.
실제로 이번에 외환딜러 30명이 받은 ‘징역 20년형’은 꽤 중형이지만, 앞서 나온 다른 판결들에 비하면 오히려 경미한 편이다. 이른바 ‘금화의 술탄’으로 불린 바히드 마즐루민과 공범 무함마드 이스마엘 가세미 사건이 대표적이다. 외환 딜러인 두 사람은 ‘금 2톤을 사재기해 이란 경제를 교란했다’는 혐의로 지난 7월 초 체포됐다. 반부패특별재판소는 10월 1일 사형을 선고했고, 대법원은 20일 후 형을 확정했다.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지난달 14일 사형이 집행됐다. 이란 당국이 적용한 죄목은 이슬람 율법상 가장 악질적 범죄인 ‘모프세데 펠아즈(신을 적대하고 세상에 부패와 패륜을 유포한 죄)’였다. 최근에도 비슷한 혐의를 받는 3명이 사형을 선고받아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국제사회는 우려를 감추지 않고 있다. 국제인권단체인 앰네스티인터내셔널은 “사형을 당한 이들은 ‘극도로 불공정한’ 재판을 받은 시범 케이스”라며 “치명적이지 않은 범죄에는 사형을 금지한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영국 인디펜던트도 “경제 위기, 부패한 정권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일개 상인들에게 전가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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