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소소위도 건너뛴 거대 양당의 담합
일자리ㆍ특활비 등 소소위에서도 결정 미룬 채 넘겨
민주ㆍ한국당 원내대표가 32조원 넘는 예산 막판 흥정
내년 예산안 심사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국회 예산결산특위 비공식 기구인 소(小)소위에서조차 결정을 미루고, 원내대표 간 합의로 넘겨버린 예산만 70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소위 논의도 ‘밀실 협상’이라고 비판 받는 마당에 법적으로 예산심사 권한이 전혀 없는 교섭단체 원내대표들이 소소위 밖의 밀실 속 밀실로 가져가 정치적 흥정의 대상들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10일 본보가 단독 입수한 소소위 심사현황에 따르면, 예결위 소위에서 보류된 223건(예산부수법안 등 26건 제외)이 예결위원장과 각 당 간사 간 협의체인 소소위로 넘어 갔다. 국회를 통과한 새해 예산(469조 6,000억원)의 17.3%(81조 2,331억여원)에 달하는 규모다.
이 중 109건이 소소위 차원에서 증ㆍ감액이 확정됐고, 44건은 소위 원안대로 유지됐다. 그리고 28%에 해당하는 70건은 재보류 항목으로 분류돼 바른미래당이 빠진 민주당과 한국당 원내대표 간 마지막 ‘짬짜미’ 합의에서 최종 결정됐다. 32조 5,445억여원이 밀실 속 밀실에서 심사가 이뤄진 것이다.
소소위에서도 합의를 못해 원내대표 간 합의로 넘긴 70건의 항목을 보면 왜 짬짜미 예산 합의가 문제인지 여실히 드러난다. 재보류 항목에는 청년구직활동 지원금과 고용창출 장려금 등 문재인 정부가 필수 예산이라 주장했던 일자리 예산이 대거 포함됐다. 또 한국당이 대폭 삭감을 예고했던 대통령 비서실 업무지원비 등 특수활동비 중 상당 부분이 소소위 차원에서 결정되지 못한 채 원내대표 간 협상 테이블로 올라갔다. 일자리 예산과 정부 특수활동비 등은 꼼꼼한 심사가 필요한 예산임에도 불구하고 거대 양당이 정치적 일괄 타결에 기댔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야 모두 겉으로는 중요성을 강조했던 민생과 혁신 사업 예산이 밀실인 소소위에선 감액 대상에 오른 것도 정치권의 표리부동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민생이나 혁신 예산은 정치적으로 이해관계가 민감하지 않아서 흥정 대상으로 삼아도 부담이 덜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재난안전통신망 구축 및 운영 비용은 최근 안전사고가 잇따르면서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상임위에서 9억 1,000만원 삭감된 관련 예산이 소소위에서는 두 배가 넘는 20억원이나 감액됐다. 또 블록체인 활용기반 조성산업이나 빅데이터 플랫폼 및 네트워크 구축 사업, 가상증강현실콘텐츠 원천기술개발 사업 등 여야 모두 강조하는 혁신 분야 예산도 줄줄이 감액 대상에 올랐다.
소소위의 밀실 논의 관행을 개혁해야 하는 이유도 이번 예산 심사 과정에서 확인됐다. 당초 상임위에서 17억 1,900만원을 삭감하기로 했던 한부모가족복지시설 지원 예산은 공개 회의장인 예결위 소위에서 송언석 한국당 의원이 61억 3,800만원 전액 삭감을 주장했다가 논란이 됐다. 이후 한부모가족 관련 예산의 중요성이 여론을 통해서 확산되자 소소위에서도 추가 삭감 없이 상임위 원안이 유지됐다. 만약 한부모가족 관련 예산에 대한 공론화가 없었다면 추가 감액이 불가피했을 것이라는 게 국회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반면 국회 미래연구원 예산은 상임위 심사에서 1억900만원 삭감 의결된 예산을 도로 증액했다. 상임위에서 삭감된 예산을 살리려면 상임위의 재의결을 필요로 한다는 원칙을 국회 스스로 깨면서까지 여야가 ‘제 밥그릇 챙기기’에 합심했다는 뜻이다.
김성환 기자 bluebird@hankookilbo.com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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