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연애를 마치고 지난달 결혼한 신부 강주영(29)씨는 청첩장에 자신의 이름을 신랑보다 앞에 오도록 했다. 청첩장을 받은 사람들은 대체로 “신부 이름이 앞에 나오네요” 질문과 함께 의아하다는 반응이었다. 정작 강씨는 “신부가 신랑에게 시집을 ‘가고’, 신랑은 신부를 ‘받아’준다는 틀 속에서 이뤄진 ‘청첩장 관행’을 깨고 싶었다”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이다.
예비부부들 사이에서 ‘남자 이름이 먼저 나오는 청첩장’은 가부장제 결혼식의 상징이라며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호주제가 폐지된 지 10년이 지났고, 아이가 아빠 성을 따를지 엄마 성을 따를지 부부가 협의해 정하자는 얘기가 나오는 지금, 청첩장 역시 변하고 있는 것이다.
무조건 신부 이름을 신랑보다 앞세우지는 않는다. 신부용, 신랑용을 따로 인쇄해 나눠주는 이들도 있다. 9월 결혼한 김현정(30)씨는 “자신의 결혼을 알린다는 측면에서 각자의 이름을 앞세우는 청첩장을 서로의 지인들에게 나눠주니 스스로 당당해졌다”고 말했다.
‘가나다’ 순으로 정하는 경우도 있다. 신부 성이 ‘김’이고 신랑 성이 ‘박’이면, 신부 성명을 앞세우는 식이다. 내년 3월 결혼을 앞둔 정현우(32)씨는 이런 방식을 택해 김씨인 신부 뒤에 자신의 성명이 나온다. 정씨는 “아이의 성씨를 부모가 협의해 결정하자는 정책이 논의되는 마당에 결혼식 역시 남성 위주 관행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먼저 가나다 순 방식을 제안했고 신부도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했다.
부모 세대에게는 아직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분위기다. 내년 9월 딸 결혼을 앞둔 이모(59)씨는 “누구 이름이 먼저 나오느냐가 그리 중요한 건 아니지만, 남들이 하는 대로 하지 않지 않고 왜 튀려 하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이씨 딸은 지인용과 부모용 청첩장을 따로 만들기로 했다고 한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결혼은 여성이 남성에게 편입되는 게 아니라 성숙한 개인 간의 결합이라는 것을 알리는 좋은 일상 속 실천”이라고 강조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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