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촌’이란 말은 역설적으로, 이웃일수록 잘 지내기 어렵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미국 북서부 오대호를 끼고 아래 위로 마주보고 있는 미시간주와 오하이오주의 주 경계에는 ’좋은 담장이 좋은 이웃을 만든다’는 명판이 박혀 있다. 1835~36년 양측 무장 민병대가 대치하며 내전 사태까지 치달았던 현장으로, 1965년 두 주의 주지사가 합의해 설치한 것이다. 그 대치를 그들은 ‘톨레도 전쟁(Toledo War)’이라 부른다.
오대호 일대의 미국 북서주 경계는 미연방 의회의 1787년 조례가 정한 원칙, 즉 호수의 경계를 따라 확장한 선을 기준으로 그어졌다. 하지만 당시 지도와 측량기술은 썩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고, 오대호와 대규모 습지는 실측의 어려움을 가중시킨 난관이었다. 1803년 미국의 17번째 주가 된 오하이오주는 지도와 조례에 근거해 미시간호 경계보다 한참 북쪽 선까지, 면적기준 약 1,210㎢의 일명 ‘톨레도 스트립’을 주영토로 편입했다.
미시간주는 1810년대 이후 간헐적으로 불만을 제기했지만 그리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1825년 이리운하(Erie canal)가 뚫리고 오대호와 대서양이 연결되자 상황이 급변했다. 오대호의 수운 가치가 급상승했고, 분쟁 지역의 도시 톨레도는 해운, 무역 및 상업의 거점도시로 급부상했다. 미시간주의 경계 수정 요구에 연방의회는 오하이오주를 편들었다.
1835년 2월 미시간 주지사가 된 23세의 정치인 스티븐 메이슨(Steven Mason)은 주법을 제정, 분쟁 지역의 미시간주 편입을 선언했다. 해당 지역에서 오하이오주 경찰이나 세무서원 등이 사법ㆍ행정권을 발휘할 경우 미시간주 형법에 따라 처벌한다는 게 골자였다. 오하이오 주지사 로버트 루카스(Robert Lucas)도 국경을 재확정하는 법을 제정하고 통치권 행사 의지를 더 공고히 했다. 1835년 7월에는 미시간주의 한 보안관이 오하이오주의 무장 경비병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칼에 찔렸다. 직후 양측은 주방위군을 동원, 대치했다.
분쟁은 당시 앤드루 잭슨 대통령의 중재로 1836년 12월 14일 타결됐다. 미시간주가 연방에 편입하며 톨레도스트립을 양보하는 대신 미시간호와 슈피어리어호 사이 ‘상부반도(Upper Peninsula)’를 얻는 조건이었다. 두 이웃의 사이가 그나마 나아진 건 만년설의 그 ‘쓸모 없는’ 상부반도에서 막대한 구리와 철광맥이 발견된 뒤부터였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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