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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슨 국내 도입 2년… ‘열풍’ 식고 ‘숙제’ 쌓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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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슨 국내 도입 2년… ‘열풍’ 식고 ‘숙제’ 쌓여

입력
2018.12.12 04:4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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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의사 왓슨 도입 2년 중대 고비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일보 자료사진

“왜 왓슨이 권고한 대로 하지 않고 다른 항암제를 쓴다는 건가요? 왓슨이 최고라고 하던데요.”

지난해 IBM의 암 치료용 인공지능(AI) 솔루션 왓슨(Watson for Oncology)을 도입한 지방 한 대학병원에서 위암을 치료하고 있는 A교수는 최근 항암제 선택을 두고 환자와 실랑이를 벌였다. 왓슨이 ‘강력 추천’한 항암제는 미국에서는 사용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시판되지 않은 치료제라 선택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설득 끝에 국내에서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항암제를 투여하기로 했지만 환자는 미련이 남은 눈치였다고 한다. A교수는 11일 “10건 중 2, 3건 정도는 왓슨이 내린 권고를 따르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한다”며 “왓슨의 권고에 반하는 치료법을 선택할 때마다 환자에게 그야말로 A부터 Z까지 소상하게 설명해야 해 왓슨에 회의를 느끼는 교수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첨단기술로 무장한 ‘AI 의사’로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2016년 8월 가천대길병원을 시작으로 국내 도입 2년여가 된 왓슨. 도입 당시 왓슨의 ‘족집게 진료’에 암 환자들이 매료되고 있다는 찬사 일색이었던 것과 달리 최근 들어 평가가 상당히 박해졌다. 왓슨의 역할에 회의적인 시각들이 번지기 시작하면서 올 들어 왓슨을 도입한 병원은 단 한 곳도 없는 실정. 도입 2년 만에 중대고비를 맞으면서 ‘열풍’은 지나가고 ‘숙제‘만 남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료현장에서 왓슨이 내린 권고대로 치료를 하지 못하는 사례가 자주 발생하는 것은 왓슨의 태생적 한계에서 비롯된다는 평가다. 왓슨은 300종 이상의 의학저널, 200권 이상의 전문서적, 1만5,000쪽 분량의 암 치료 관련 연구 자료를 습득했지만 대부분 미국과 유럽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한국인을 비롯한 동양인은 서양인과 암 발병 원인이 다르고, 항암제에 대한 반응도 차이가 있다.

[저작권 한국일보]왓슨(Watson for Oncology) 도입병원_김경진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왓슨(Watson for Oncology) 도입병원_김경진기자

대표적인 것이 위암이다. 위암은 국내에서 환자수가 가장 많은 암이지만 미국에서는 ‘10대 암’에 포함되지 않은 흔치 않은 암이다. 박건욱 계명대 동산의료원 혈액종양내과교수는 “위암의 경우 우리나라가 미국이나 유럽보다 내시경 및 수술을 통한 치료법이 발달돼 있다”며 “위암에 관한 한 왓슨의 권고는 그야말로 참고사항일 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위암의 우리니라 5년 상대 생존율은 75.4%로 미국의 31.1%보다 2배 이상 높다.

왓슨이 국내 건강보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최종권 건양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왓슨이 권고한 치료제가 국내에 있다 쳐도 급여혜택을 받을 수 없거나 특정 암 치료에만 사용이 허가됐을 경우엔 왓슨의 권고를 따를 수 없다”며 “환자가 모든 비용을 부담한다고 해서 왓슨이 권고한 치료제를 썼다가, 환자가 변심해 과잉진료를 이유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민원을 제기하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왓슨이 모든 암의 치료법을 제시할 수 없는 것도 한계다. 왓슨은 전 세계적으로 발병률이 높은 암 중 80%를 차지하는 13종의 암을 진단할 수 있도록 트레이닝 받고 있지만, 백혈병 등 혈액암은 진단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박건욱 교수는 “왓슨은 장기에 발생하는 고형암 진단에 활용되는 솔루션”이라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AI 의사’란 기대는 점차 식어가고 ‘AI 의료보조도구’ 정도로 인식되는 모습이다. 왓슨을 사용하고 있는 한 대학병원 교수는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는 왓슨에 반하는 결정을 내릴 때마다 고민해야 하고, 병원은 왓슨과 관련 어떤 수가도 받지 못하면서 IBM에 매년 꼬박꼬박 고가의 로열티를 지급해야 하는 상황이 지속돼 왓슨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IBM 측도 한 발 뒤로 물러서는 모습이다. IBM 관계자는 “처음부터 왓슨을 인공지능의사 목적으로 개발하지 않았다”며 “실제 처방에 대한 결정은 언제나 의사와 환자의 손에 달렸다”고 말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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