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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감사받을 자격

입력
2018.12.10 04:40
수정
2018.12.10 07:3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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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감사하다는 말을 들을 일이 많다. 대부분 부지불식간에 흘러가는 말이다. 한 끼니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도, 허드렛 물건을 사도, 이발을 마치고 상쾌하게 바깥공기를 맞으려는 찰나에도, 우리는 감사하다는 말을 듣는다. 대개 진심에서 나오는 말로 들리지만, 때로는 그 상황에서 필요한 말이라 주고받는 듯한 그 말. 나는 한때 이 말에 약간 얹힌 기분이 들었다. 가게 주인에게 직접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정해진 노임을 받고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밥을 먹거나 물건을 얻거나 대접을 받은 것은 나지만, 감사하다는 말까지 내가 들어야 한다니. 그래서 혹여 과도한 친절을 강요하는 현대 사회의 병폐가 이 말로 전이되었거나, 우리가 무의미한 관용어로 일상의 빈번한 거래를 마무리 짓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예전 아르바이트의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사람들이 내가 파는 물건을 사거나 길에서 전단지를 받아 갈 때, 나는 늘 감사하다는 말을 건넸다. 그 감사하다는 말이 강요에 의한 것이었거나 우러나오지 않는데도 어쩔 수 없이 했던 것이었던가? 그건 아니었다. 일당 외에 내게 더 이익이 가는 일은 아니었지만, 나는 진짜 감사했다. 그들이 없으면 내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내게 와서 친절히 물건을 사거나 조용히 전단지를 받아 갔다. 그것은 내 일을 돕는 것이었고, 그들은 일정 부분에서 내게 주어진 일을 완성해주고 있었다. 가끔 한결같은 음조로 발음하기 어려웠을지라도, 내가 했던 그 말들은 하나같이 진심이었다. 그렇게 입장을 바꾸자, 우리가 일상처럼 나누는 말도 비단 습관뿐이 아닌 진심이 스며 있다고 이해했다. 그때 얹힌 기분이 나아졌다.

그리고 이제 나는 병원에서 봉급을 받는 사람이 되었지만, 거꾸로 감사하다는 말도 듣게 되었다. 환자들은 치료가 다 되어 병원 밖을 나설 때, 꼭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곤 한다. 반대로 나는 좀처럼 감사하다는 말을 하기 어렵다. (응급실 의사가 환자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는 상황은 조금 이상하다.) 허나 말은 내가 들었지만 나는 내 환자들에게 충분히 감사하다. 그들은 나라는 사람을 알지 못했지만, 내가 그 자리에서 가운을 입고 그들을 진료하고 설명했다는 이유로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다. 아픈 사람이 있기에 내 일도 있는 것이며, 내게 감사함을 표하는 사람은 내 일을 돕고 완성해주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감사의 표현도 내가 듣기에 황송하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낯선 나를 믿어주는 고마운 환자들에 대해, 더 마음으로 그 말을 갚고 싶은 기분에 든다.

그리고 감사함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를 생각했다. 낯선 사람끼리 약간의 거래를 했을 뿐이어도, 우리는 늘 감사하다는 말로 마무리 짓는다. 그 감사함은 언어로 꺼냄으로 실재하는 것이며, 실제로 우리 누군가는 감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문제는 그 감사함이 진심이냐, 진심이 아니냐를 파악하는 것에 있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르바이트 생이나 환자들처럼, 그 자리에서 누군가를 응대해야 하거나 낯선 이를 믿어야 하는 사람이 먼저 감사를 표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근본적인 요는 감사하다는 말을 듣는 사람의 태도나 자격이다. 우리는 종종 감사함을 표하는 사람에게 폭언을 가하거나 얼굴에 햄버거를 던지는 일을 목격한다. 감사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실상 도움은 내가 받고 있으며, 나는 그 말을 갚기 위해 그들의 일이 조금이라도 순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생각 없이, 다만 자신이 조금 더 높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상 감사하다는 말을 듣는 사람일수록 책임이 더 크다. 현대 사회의 흩어지는 언어 속에서, 이를 되새기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는 생각이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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