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계몽주의철학의 대가인 임마누엘 칸트(1724~1804)가 자신의 출생도시에서 수난을 겪고 있다.
칸트의 출생도시는 발트해에 접한 구 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크. 프로이센령이었던 쾨니히베르크는 이후 독일제국으로, 다시 바이마르공화국과 나치 독일의 통치를 받다가 2차 대전 이후 소련에 점령되면서 칼리닌그라드로 이름이 바뀐다.
6일(현지시간) 미국 온라인 매체 쿼츠, 영국 BBC 등 외신에 따르면 최근 칼리닌그라드에서는 격렬한 반(反)칸트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의 발단은 칼리닌그라드 소재 공항인 크라브로와공항 명칭 변경을 놓고 진행된 온라인투표다. 러시아 연방공공회의소와 역사학회가 주관한 온라인 투표에서 ‘칸트공항’으로 명칭변경 지지가 가장 높자. 일부 칼리닌그라드 시민들이 거세게 항의하고 나섰다. 반 칸트 시위 주도자인 러시아 발틱함대의 제독 이고르 무하카메트신은 “칸트는 반역자”라며 시위대와 함께 칸트의 동상에 페인트를 던지거나, 칸트의 무덤과 생가를 공격했다. 이들은 지난주 칸트 기념비 근처에서 ‘칸트라는 독일인 이름이 우리 공항을 더럽힐 수는 없다’는 전단도 배포했다. 칸트가 제정 러시아에 적대적이었다는 증거는 전무하지만, 반 칸트 시위대는 칸트를 조국의 배신자라고 성토한다. 칸트를 반대하는 시민들은 또한 칸트가 “아무도 읽을 수도, 이해할 수 없는 책을 썼을 뿐”이라고 그의 학문적 위상마저 깎아 내리고 있다. 결과보다는 행위의 동기를 중시한 칸트의 의무론은 칼리닌그라드의 정서와 맞지 않다는게 반 칸트 시위대의 주장이다. 관념론에 비판적인 구 사회주의의 영향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쿼츠는 이런 학문적 비판은 구실에 불과하다고 풀이한다. 쿼츠는 이에 대해“사상적 비판이라기보다 러시아의 반(反)서방 정서가 표출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도시의 상징이기도 한 칸트에 테러 가까운 반발이 이어지는 건 일부 시민들이 ‘당시 독일 철학자인 칸트가 러시아를 무시했다’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칸트 공항’을 지지하는 시민들도 있다. 칼리닌그라드 대성당 대변인은 “반(反)칸트 시위의 동기를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지자 중 일부는 지난 주 칸트의 묘지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대의 과격한 행동을 저지하기도 했다.
이슬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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