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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천루 숲속에 오아시스, 홍콩의 타이퀀 재생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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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천루 숲속에 오아시스, 홍콩의 타이퀀 재생 실험

입력
2018.12.08 04:4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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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경찰서ㆍ법원 밀집한 사법단지를 복합 문화 공간으로 개조 

 탄약고는 극장, 감옥은 전시장으로… 개장 7개월, 도심에 활력 

고밀도 초고층 도시의 대표주자 홍콩이 달라지고 있다. ‘세계 유명 건축가들의 고층빌딩 전시장’에서 ‘아시아 문화예술 전시장’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100년이 훌쩍 넘은 옛 건물을 고스란히 되살리는 ‘문화 유산 보존’ 프로젝트다. 지난 5월 홍콩 역사상 최대 규모로 진행된 타이퀀 재생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스위스 건축가 자크 헤어초크ㆍ피에르 드뫼롱은 “홍콩에서 새로운 건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면서 “오래된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기보다 어떻게 보존할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오아시스처럼 홍콩 센트럴 지역 초고층 빌딩 사이에 자리잡은 타이퀀. 헤어초크ㆍ드뫼롱 건축사무소 제공.
오아시스처럼 홍콩 센트럴 지역 초고층 빌딩 사이에 자리잡은 타이퀀. 헤어초크ㆍ드뫼롱 건축사무소 제공.

 

170여년전 감옥으로 사용됐던 공간(왼쪽)에는 현재 죄수들의 생활방식을 빗댄 설치 작품(오른쪽)을 만날 수 있다.
170여년전 감옥으로 사용됐던 공간(왼쪽)에는 현재 죄수들의 생활방식을 빗댄 설치 작품(오른쪽)을 만날 수 있다.

 

 ◇원스톱 사법기구가 복합문화공간으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지난 5월 문을 연 타이퀀(Tai Kwunㆍ大館)이다. 홍콩 센트럴의 초고층 빌딩 뒤편에 4층 안팎의 낮은 건물 21채가 옹기종기 자리잡고 있다. 우리말로 ‘큰 집’이라는 뜻의 타이퀀은 1850년대 홍콩에 주둔하던 영국군이 중앙경찰서, 빅토리아 감옥, 법원 등의 관공서를 한데 모아놨던 ‘원스톱 사법기구’였다. 1841년 중앙경찰서를 시작으로 잇따라 생겼다. 1995년 문화재로 지정된 후 2008년 복합문화공간으로 재생시키자는 홍콩 자치 정부의 결정에 따라 10년간 리모델링을 거쳐 재탄생했다. 총예산 4억5,800만달러(약 5,000억원)를 들인, 홍콩 역사상 최대 규모 프로젝트이다.

지은 지 170여년이 흘렀지만 경찰서 본관을 비롯, 부속 건물들 대부분이 예전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경찰서로 쓰인 빨간 벽돌 건물과 널찍한 베란다를 갖춘 하얀 석조 건물은 1860년대 들어섰다. 박공(책을 엎어놓은 모양의 지붕 양식) 지붕도 그대로다. 벽돌은 당시 영국에서 주로 사용됐던 자재였고, 베란다는 덥고 습한 홍콩의 기후 특성을 고려해 만들어졌다. 보통 남향인 베란다가 북향으로 배치된 것은 교도소가 뒤편에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들의 사무공간이었던 이 건물엔 지금 식당과 카페, 기념품 가게가 입점해 있다. 감옥 건물은 여전히 작은 감방 형태 그대로다. 안에는 당시 죄수들의 생활방식을 보여 주는 영상과 설치 작품들이 있어 관객을 맞는다.

타이퀀 평면도.
타이퀀 평면도.

경찰서 건물 뒤편 교도소 뒤뜰 주변으로는 현대와 전통이 조우했다. 기존 부속 건물 두 곳을 헤어초크ㆍ드뫼롱이 현대적으로 리모델링했다. 격자무늬의 알루미늄 판이 벽돌 쌓듯 건물을 에워싼다. 주위 붉은 벽돌 건물과 조화를 이루며 눈길을 끈다. 헤어초크는 “주위 건물에 사용된 벽돌 양식을 반영했고, 내부에 강한 석조는 그대로 뒀다”라며 “기존 건물들을 해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스며들기 위한 것”이라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동선은 건물 내외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타이퀀을 둘러싸고 5개의 출입구가 있어 시내 곳곳에서 쉽게 출입이 가능하다. 헤어초크는 “세계에서 가장 밀집된 도시에서 건물 사이에 이 같은 정원 같은 공간이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라며 “도심의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곳곳으로 동선을 연결했다”고 했다.

옛 영국군 탄약창고는 현재 비영리재단인 아시아 소사이어티 홍콩 지부가 맡아 미술관, 영화관 등으로 쓰고 있다. 바닥에 보이는 철길 자국은 석탄을 나르던 길이었다. 홍콩 관광청 제공
옛 영국군 탄약창고는 현재 비영리재단인 아시아 소사이어티 홍콩 지부가 맡아 미술관, 영화관 등으로 쓰고 있다. 바닥에 보이는 철길 자국은 석탄을 나르던 길이었다. 홍콩 관광청 제공
아시아 소사이어티 홍콩 지부 내 각 건물을 이어주는 통로. 생태계 보호를 위해 지그재그로 놓여 있다. 강지원 기자
아시아 소사이어티 홍콩 지부 내 각 건물을 이어주는 통로. 생태계 보호를 위해 지그재그로 놓여 있다. 강지원 기자

 ◇탄약고는 극장, 미술관으로 

1860년대 영국이 홍콩을 지배할 당시 홍콩섬 캐머런산 자락에는 영국군의 탄약 제조 창고가 있었다. 산에서 캐낸 석탄을 창고로 운반해 탄약을 제조하는 데 쓰였던 이 곳은 이후 경찰서 등으로 사용되다 1997년 주권이 중국으로 반환된 뒤 비어 있었다. 이후 홍콩 자치 정부가 원형 보존을 전제로 비영리재단인 아시아 소사이어티에 임대했고, 2012년 리모델링을 거쳐 현재 극장, 미술관, 행사장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총 4개 건물이 복층 형태로 있고, 각 건물은 지그재그 모양의 통로로 연결된다. 박쥐와 열대식물 등 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해 통로를 일부러 둘러서 냈다. 이 때문에 마치 산책하듯 각 공간을 둘러볼 수 있다.

다리를 건너면 석조 건물에 주황색 기와를 얹은 3개의 탄약 창고를 차례대로 볼 수 있다. 이들 창고는 ‘1급 역사 건물’로 지정돼 보존되고 있다. 통로 바닥에는 탄약을 운반하기 위해 사용됐던 철로의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탄약 창고의 외양은 그대로지만 내부는 리모델링을 거쳐 극장과 미술관, 사무공간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현재 미술관에서는 중국 여성 예술가인 판위량(潘玉良ㆍ1895~1977)의 회고전을 하고 있다.

아시아 소사이어티 건물을 위에서 찍은 모습. 주황색 기와를 얹은 두 개 건물과 그 사이 건물이 탄약창고였다. 홍콩 관광청 제공
아시아 소사이어티 건물을 위에서 찍은 모습. 주황색 기와를 얹은 두 개 건물과 그 사이 건물이 탄약창고였다. 홍콩 관광청 제공

세 개의 탄약창고는 본관 건물로 이어지는데, 이는 세계적인 부부 건축가 토드 윌리엄스ㆍ빌리 첸이 설계했다. 이들 부부는 중국 본토에서 사용되는 초록빛 화강암을 사용해 주위 풍경과 어우러지도록 하고, 경관을 해치지 않도록 통로를 설계했다. 이들 부부는 초고층 빌딩 사이에서 이 건물이 명상을 할 수 있는 공간, 산책할 수 있는 다리가 되길 바랬다고 센터 관계자는 설명했다.

100년도 더 된 옛 경찰 기숙사 건물이었던 PMQ는 현재 신진 작가들의 작업실 겸 아트숍으로 바뀌었다. 홍콩 관광청 제공
100년도 더 된 옛 경찰 기숙사 건물이었던 PMQ는 현재 신진 작가들의 작업실 겸 아트숍으로 바뀌었다. 홍콩 관광청 제공
서로 마주한 두 동 건물로 이뤄진 PMQ는 한 동은 미혼 경찰 숙소로, 다른 한 동은 기혼 경찰 숙소로 사용됐었다. 홍콩 관광청 제공
서로 마주한 두 동 건물로 이뤄진 PMQ는 한 동은 미혼 경찰 숙소로, 다른 한 동은 기혼 경찰 숙소로 사용됐었다. 홍콩 관광청 제공

 ◇경찰 기숙사는 작가 작업실로 

타이퀀에서 400m가량 떨어진 골목에 콘도 건물을 연상시키는 두 개의 하얀 4층짜리 건물이 나란히 있다. 두 건물 사이 공터에는 부딪히면 소리가 나는 그네, 원목 장난감 자동차를 굴리면 아래로 떨어지면서 소리가 나는 지렛대 고속도로가 설치돼 있다. ‘소리’를 주제로 하는 관객 체험형 작품이다.

이곳은 한때 경찰 관사로 사용됐던 PMQ(元創方ㆍPolice Married Quarter)이다. 홍콩 최초의 서양식 교육기관이었던 빅토리아 칼리지가 1889년 이곳으로 이전했다가 1951년 경찰 기숙사로 용도가 바뀌었다. 1950년대 많은 수의 난민이 홍콩으로 유입되면서 경찰 수요가 늘어나자 지어진 경찰 기숙사다. 당시 140개의 싱글룸과 28개의 더블룸이 있었다. 건물 한 동은 기혼자를 위한 숙소였고, 다른 건물은 미혼자들이 사용했다.

2000년부터 비어 있었는데 2009년 재생 사업이 진행돼 2010년 홍콩의 유망 신진 작가와 디자이너들의 창작활동 지원 센터로 변신했다. 미혼자를 위한 기숙사였던 곳은 현재 디자이너들의 작업실로 사용되고 있고, 다른 한 동은 작품 판매, 전시 공간이다. 민현식 기오헌 건축사무소 대표는 “역사적 공간을 보존하면서 새로운 공간으로 활용하는 건 홍콩을 비롯해 서울 등 세계 각국의 흐름”이라면서 “하지만 역사적 상황에 대한 이해 없이 지나치게 관광 중심으로 쏠리는 것은 아닌지 잘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홍콩=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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