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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갑질의 먹이사슬과 내 탓이오

입력
2018.12.08 04:4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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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다음 사례는 특정 직종에서 다른 직종보다 갑질이 더 심하다는 뜻이 전혀 아님을 밝혀둔다. 이른바 부자 동네에 있는 A병원은 어느 중소도시에 있다가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크고 깨끗한 시설에 경륜 있는 의료진. 그 병원은 단기간에 환자가 늘어나 잔뜩 고무돼 있다. 그런데, 중소도시에 있을 때부터 함께 일했던 간호 인력 한 사람이 갑자기 그만두었다고 한다. 이유를 들어보니, 일부 소수의 환자들이 자신을 노예처럼 하대하는 것을 견디기 어렵다는 것이다. 접수 창구부터 시작되는 반말과 폭언, 의료진 한 사람 한 사람의 학벌을 캐묻고 모두 특정대를 나온 것을 확인해야 진료를 받는 사람, 불평을 해서 사과를 하고 진료비를 돌려주니 오히려 자신을 무시하는 거냐며 돈을 바닥에 던지는 사람, 툭하면 원장 나오라며 소리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하니 근무 의욕을 잃는 건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의사들도 전공의 시절에는 역시 갑질의 가해자 또는 피해자였을 수도 있다. 김승섭 고려대교수가 2014년 1,745명의 전공의를 상대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일부 전공의들은 지도교수, 선배 전공의, 그리고 환자로부터 폭력에 시달린다고 한다(‘아픔이 길이 되려면’, 동아시아). 인턴의 13.1%가 신체적 폭력을, 61.5%가 언어폭력을 경험하였을 뿐만 아니라 응답자들이 동일 연령대의 일반 노동자에 비해 9배의 요통, 22배의 불면증이나 수면 장애를 겪고 있다 하니 그들 역시 아파하고 있는 건 매한가지다.

김 교수에 따르면, 구급대원들 역시 일부 환자의 언어폭력, 물리적 폭력, 그리고 성희롱까지 많은 고충을 겪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비상상황을 자주 경험하기에 심리적 트라우마가 생길 확률도 높다.

종합하면, 상황에 따라 강자가 되었을 땐 다른 이를 괴롭히다가도, 약자의 처지일 때는 갑질의 피해자가 되기도 하는 게 우리 문화가 아닌가 싶다. 갑질은 그것을 용인하는 문화 속에 또아리를 트는 것 같다.

우리 사회의 폭력과 갑질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만연해 있다. 갑질은 오직 돈과 명예만을 위한 무자비한 경쟁, 내가 손님이고 상급자면 이 정도의 폭력은 용인된다는 교만, 그리고 수단을 가리지 않고 남을 딛고 올라서야 내가 잘 성장할 수 있다는 기대에서 비롯된다. 최근 범죄가 드러난 웹하드 업체 대표처럼 남에 대한 무자비함이 곧 일에 대한 열정이자 집념이며, 다른 사람들의 소중한 가치들을 내 성공을 위해 희생시킬 줄 아는 자가 궁극적 성공에 이르게 된다는, 뒤틀린 성공관을 가진 사람들이 병리적 현상을 계속 연출하는 것이다.

이렇듯 사회 전반에 만연한 갑질의 먹이사슬을 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990년, 김수환 추기경이 천주교 평신도들과 시작했던 ‘내 탓이오’ 운동은 일부에서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개인에게 전가한다고 비판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 전반에 큰 울림을 주었다. 난 우리 사회에 만연한 폭력을 해결하는 단초가 개개인의 ‘내 탓이오’라는 결단에 있다고 믿는다. 결단을 공유하는 개인들이 모여 연결망이 되고, 그런 연결망이 모여 신뢰라는 사회자본(social capital)이 될 때, 우리는 좀 더 다른 이의 입장에서 세상을 이해하게 되고, 그런 이해가 세상을 바꾸게 될 것이다. 혹자는 물을 것이다. 나는 변했는데, 다른 이들이 안 변하면 어떡할까? 갑질이 더 만연하는 건 아닐까?

설사 당신이 아는 사람이 아직 안 변했다 할지라도 당신의 변화에 감동받은 또 다른 누군가는 이미 변했거나 변하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전염 효과는 이미 과학적으로도 입증돼 있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을 건널 때마다 영향력은 약해지지만 영향을 받는 사람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바로 오늘. 나의 마음에서 변화는 시작한다.

김장현 성균관대 인터랙션사이언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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