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가 완료됐지만 한 달 넘게 남북 경비병들의 자유 왕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JSA 내 지뢰 제거 작업과 화기 철수는 이미 10월 말 끝났다. 하지만 후속 작업이 지연되면서 현재 무기를 들지 않은 남북 경비병들이 각자 지역을 알아서 경비하는 기형적 형태가 계속되고 있다. 이유는 남과 북, 유엔사 3자가 공동근무수칙에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JSA에서 근무하는 각 35명의 남북 경비병에게 적용할 수칙 마련에 애를 먹고 있는 것이다.
□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으로 JSA 중간에 군사분계선(MDL)이 설치되기 전만 해도 남북 병사는 이곳을 자유롭게 오갔다. 선임병들은 수시로 대성동 마을 부근과 감시카메라가 닿지 않는 곳에서 담배와 술을 주고받는 등 접촉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모티프가 됐다. 40여년 만의 JSA 자유 왕래인 만큼 과거 같은 상황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청년들이 함께 근무하다 보면 우발적 충돌이 생길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자칫 9ㆍ19 군사합의 무력화는 물론 남북 평화 분위기까지 해칠지 모른다.
□ 남북이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신체 접촉 최소화다. 양측이 3인 1조로 순찰을 도는데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코스를 만들고 있다. 남북 병사들 간의 대화도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한다. 친분이 쌓이지 않도록 병력을 2주마다 교대한다는 게 우리 측 계획이다. CCTV 배치도 중요한 대목이다. 지금까지 남북이 상대 쪽을 향하게 했던 것을 이젠 JSA 전 지역을 감시할 수 있도록 CCTV를 전면 재배치 중이다. JSA 내 남북 경비병들이 휴식을 취하는 내무반에도 CCTV를 설치할 계획이다. 이들 CCTV는 JSA 외곽 대대급 부대에서 24시간 들여다보게 된다. 남북 장병 90명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는 셈이다.
□ 관광객들의 월북ㆍ월남 가능성도 남북이 우려하는 부분이다. JSA 출입구에 남북이 각각 초소를 설치하고 근무 인원을 12명씩 배치한 것도 월경을 막기 위한 조치다. 관광객들에 대한 신원조회도 훨씬 까다로워진다고 한다. 남과 북, 유엔사는 현재 언어 등의 문제로 협의가 늦어질 것을 우려해 광통신을 이용한 문서 교환 방식을 동원하고 있다. ‘분단의 상징’에서 ‘평화의 상징’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이 그리 쉬울 수는 없다.
이충재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