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구원 기자

부산에 사는 손모(59)씨는 2004년부터 A씨와 동거하며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다. 2015년 암 진단을 받고 이듬해 3월 병원에 입원한 A씨는 손씨에게 “오래 살기 힘들 거 같으니 차량 두 대를 팔아 내가 죽고 나면 생활비로 쓰라”고 말했다. A씨는 차량을 판 돈을 손씨에게 주라며 자동차매매상인 김모씨에게 매도위임장과 신분증을 전달하기도 했다. 김씨는 차량을 판 후 판매대금 4,200만원을 손씨 계좌로 입금했는데, 판매절차 진행 중에 A씨가 사망한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

A씨의 유일한 혈육이자 법적 상속인이던 B씨는 이 점을 문제 삼았다. A씨가 사망해 위임계약이 무효가 됐음에도 상속재산을 임의로 판매해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에 검찰은 4,200만원 중 일부를 생활비로 사용한 것에 대해 손씨를 횡령 혐의로 기소했다.

1심과 2심 법원은 서로 다른 판단을 내렸다. 1심은 “김씨가 A씨 사망을 통지 받지 못했기 때문에 위임계약은 유효하며 손씨가 이 돈에 대한 불법 영득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2심은 “A씨 사망으로 위임계약이 종료되므로 손씨나 김씨는 매도 권한이 없다”라며 “매도대금을 무단 인출한 것은 횡령”이라고 유죄(선고유예) 판단했다.

대법원은 1심이 판단이 맞다고 봤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는 “손씨와 A씨 사이에는 증여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이 계약은 사망 후 상속인에게 함께 승계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손씨는 4,200만원을 증여계약 이행에 따른 돈으로 생각했을 뿐 B씨를 위해 보관한다는 인식은 없었다”며 “2심이 횡령죄의 불법 영득의사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2심 법원에 돌려보냈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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