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시장 옷 만든 박재영씨
승무원 출신 디자이너 한현주씨
DDP에 콜라보 팝업스토어 열어
“맨 처음 디자인 시안 봤을 때요? 많~이 놀랐죠.” 봉제장인 박재영(53)씨가 한숨을 쉬자 디자이너 한현주(39)씨가 민망한 듯 웃음을 터뜨린다. “시안 많이 바꿨어요. 그래도 같이 작업한 디자이너 중에서 제가 제일 양호했다고 들었는데요.” 업계 경력으로 30년 이상 차이 나는 두 사람이 ‘한땀 한땀’ 함께 만든 원피스, 양모코트를 9일까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선보인다. 서울디자인재단이 운영하는 ‘봉제장인-신진 디자이너 콜라보 팝업스토어’에서다. 5일 DDP에서 만난 두 사람은 “처음에는 각자의 언어가 달라 애를 먹었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두 사람을 비롯해 마포, 용산, 서대문, 은평일대 봉제장인 9명과 신진 디자이너 20명이 함께 만든 40벌을 50~60%할인해 판매한다. 모두 이번에 처음 소개하는 신제품이다.
두 사람이 애를 먹으면서도 협업한 건 ‘한국봉제패션협회 홍보이사’로 있는 박씨가 서울시와 만난 자리에서 “봉제산업이 낙후돼 일감이 줄고 있다”고 말을 꺼낸 게 계기가 됐다. 봉제공장이 인건비 싼 중국, 동남아 등지로 대거 이전하면서 일감이 대폭 줄었고 이제 40대 이하 봉제 기술자들을 찾아볼 수 없는 현실에 직면했다는 것. 박 씨는 “주로 남대문, 동대문 시장에서 팔리는 옷을 30여년간 만들었다. 옷은 전날 주문 받아 다음날, 급하면 당일 만들어 보내기 때문에 다른 제조공장과 달리 서울 시내, 시장에 밀집돼있다. 일감 줄어도 시외로 옮기지 못한다. 서울역 고가도로가 공원화되면서 서울시가 서계, 청파지역 봉제공장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시와 협회의 여러 차례 만남에서 서울시 신진 디자이너 육성프로그램에서 배출된 인재들을 장인들과 연결해주자는 묘안이 나왔다.
서울디자인재단은 10월부터 서북권 일대 봉제장인 12명과 신진 디자이너 60팀을 매칭하고 샘플 의상을 제작, 지난 달 15일 품평회를 열었다. 여기서 ‘창의적이면서 대중적인’ 의상을 제작한 디자이너 20팀을 선정했다. 그렇게 뽑힌 사람 중 한 명이 박씨와 매칭된 한현주씨다. 12년간 외국 항공사의 스튜어디스로 일하다 “더 이상 꿈을 접어둘 수 없어” 직장을 그만 두고 밤낮으로 학원 다니면서 디자인 실무를 익혔다. “지원서 넣을 수 있는 마지막 나이”에 서울시 의상제작자 양성 프로젝트인 ‘미남미녀(미싱하는 남자, 미싱하는 여자의 줄임말로 봉제와 패턴 디자인 교육, 창업 컨설팅을 제공한다)’ 3기로 뽑혀 교육받다 이번 프로젝트에 도전했다.
열정 가득한 한현주씨의 원래 의상 컨셉트는 ‘더 펄스 오브 러브(the pulse of love)’, 하트 무늬에서 직선의 광채가 뿜어져 나오는 과감한 옷이었단다. “본판 전체가 손주름 넣는 옷이었다니까. 아무리 복잡한 옷도 샘플 만드는데 한 시간이면 충분한데, 이번에는 3,4시간씩 걸렸으니. 공정이 복잡해지면 판매가가 올라갈 수 밖에 없고, 단가 경쟁력이 떨어지면 판매가 어려워요.”(박재영) ‘한 신인’은 ‘박 장인’의 조언에 따라 포인트인 주름 잡힌 과도한 어깨를 빼고 디자인을 전부 단순하게 바꿨다. 한씨는 “그래도 좋은 소재는 포기할 수 없어서 양모 100%로 롱코트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덕분에 팝업스토어에 걸린 40벌 중 가장 비싸게 판매가가 책정됐다. 봉제장인과 신인 디자이너들이 함께 만든 의상은 9일 이후 서울 용산구 만리재로 ‘서북권 비즈니스 쇼룸’에서 판매된다.
“K팝, K뷰티 다 뜨는데 왜 K패션은 없냐고 하는데... 신인 디자이너들도 우리 같은 사람 알면 나중에 사업을 해도 제대로 된 기술자 소개받을 수 있잖아요? 한데 우리 세대가 지나면 이 일 배운 사람이 없어 우리나라도 일본, 이태리처럼 의류 제조업이 없어질 수도 있어요. 이런 시도가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지속돼서, 서로 상생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박재영)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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