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 재임 시 박병대 당시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이 ‘청와대 접촉 거점’이던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과 독대했던 사실이 확인됐다. 검찰은 두 사람이 만나 재판거래 의혹의 핵심인 강제징용 사건 처리를 논의한 것으로 보고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5일 한국일보 취재 결과,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지난달 말 이 전 실장을 소환 조사했다. 이에 검찰은 이 전 실장이 2015년 4월 법원행정처장이던 박 전 대법관과 만나 밀담을 나눈 사실을 확인했다. 이 전 실장은 박 전 대법관과 만난 사실을 부인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박 전 대법관이 이 전 실장을 만나 강제징용 사건 처리를 논의한 것으로 본다. 앞서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후 대법원 측이 공개한 ‘상고법원 관련 BH(청와대) 대응전략’(대외비ㆍ2015년 3월 작성) 문건을 보면,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접촉 및 설득해야 할 사람들이 나열됐는데 이 전 실장은 접촉 거점으로 지목됐다.
당시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은 이 전 실장을 주일대사 경력의 비둘기파(온건 성향)로 분류한 뒤, 그의 최대 관심사가 한일 우호관계 복원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면서 이 전 실장의 지위나 위상 등을 고려해 행정처장(박병대)이 직접 접촉할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이 문건대로 박 전 처장이 이 전 실장을 만난 사실이 조사로 드러난 셈이다.
박 전 대법관은 2014년 10월 당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윤병세 외교부 장관, 정종섭 안전행정부 장관 등을 비서실장 공관으로 불러 가진 비밀 회동에도 참석해 모든 강제징용 소송 진행 경과를 정리해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강제징용이 주제였던 두 모임에 참석한 사실을 감안하면, 그간 “아랫사람이 한 일이고 난 모르는 일”이라고 했던 박 전 대법관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을 수 있다.
6일 서울중앙지법은 박병대 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다. 박 전 대법관은 △강제징용 사건 등 다수의 재판 개입 △법관 사찰 △공보관실 운영비를 통한 비자금 조성 등 28개 혐의를 받고 있다. 고 전 대법관은 18개 혐의에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의 공모관계가 드러났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하급자인 임 전 차장이 구속됐기 때문에, 권한과 책임이 더 큰 상급자였던 두 대법관과의 형평성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가 영장심사의 관건”이라고 내다봤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