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장단기 국채 금리 격차가 점차 좁혀지고 있다. 일부 장단기 구간에선 이미 금리가 역전됐다. 장단기 채권의 금리 차 축소는 통상경기 불황 도래를 미리 알리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여겨지는 터라 이번 현상이 미국발(發) 글로벌 경기 둔화의 전조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장단기 금리차가 좁혀지고 있어 국내 경기 하강 가속화 우려가 높아지는 상황이다.
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채권시장에서 10년물 국채 수익률(금리)은 0.26% 내린 2.915%로 마감됐다. 채권 금리가 낮아졌다는 것은 가격이 올랐다는 의미로, 그만큼 10년물 국채를 찾는 수요가 많아졌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대표적 장기 채권으로 꼽히는 10년물과 단기 국채인 2년물(2.799%)의 금리차(스프레드)는 0.116%포인트로 좁아져 2007년 6월 이후 11년 만에 최소치를 기록했다. 한달 전(0.295%포인트)과 비교하면 금리차가 절반 이하다. 10년물 금리는 지난달 30일 3% 아래로 떨어진 후에도 하락폭을 키우고 있어 금리차는 더욱 축소될 전망이다.
2~3년물 국채 금리는 이미 5년물 금리를 앞질렀다. 이날 5년물 국채 금리(2.791%)는 전날에 이어 2년물(2.799%)과 3년물(2.808) 금리를 밑돌았다.
채권 투자자 입장에서 만기가 긴 채권을 산다는 건 위험을 무릅쓰고 돈을 장기간 빌려준다는 의미이고, 이러한 위험 프리미엄이 반영(차감)돼 장기 채권 가격은 단기물보다 낮아지게 마련이다. 통상적으로 장기채 금리가 단기채보다 높은 이유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경기 악화 가능성이 높아지면 투자자들이 단기물보다 장기물로 몰리면서 장기물 금리가 하락(가격 상승)하고 단기물 금리는 상승(가격 하락)하는 금리 역전 현상이 나타난다. 시장에서 장단기 금리의 격차 축소나 역전을 경기 침체의 전조라고 보는 이유다.
이날 미국 투자정보업체 비스포크는 1990년, 2001년, 2007년 경기 둔화 당시에도 미국 장단기 국채 간 금리가 축소되는 동향이 관측됐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이에 따르면 과거 세 차례 경기 불황은 미 국채 3년물과 5년물 금리가 역전되고 나서 평균 26개월 후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월가에서 ‘신채권왕’으로 불리는 제프리 건들락 더블라인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CNBC와의 인터뷰에서 “국채금리 곡선 역전은 경제가 곧 약해질 것이란 점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 의장이 지난달 향후 금리인상 속도조절을 시사하는 발언을 한 점도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가 높아졌다는 의미로 해석되며 채권시장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앞서 미국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올해 2분기 4.1%(연율 기준)까지 치솟은 미국 경제 성장률이 내년 하반기 1%대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고, JP모건은 향후 3년 이내 경기 침체가 발생할 확률이 87%라고 예상했다. 미중 무역분쟁 대한 불확실성이 커진 점도 향후 경제전망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국내 채권시장에서 장단기 금리차가 2년 만에 최소치로 좁혀진 까닭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5일 국고채 3년물은 전 거래일보다 0.013%포인트 내린 연 1.901%, 10년물은 0.044%포인트 하락한 2.058%로 마감했다. 이에 따라 10년물과 3년물의 금리차는 0.157%포인트로 줄었다. 이는 2016년 9월 이후 2년 2개월 만에 가장 작은 수준으로, 1년 전 금리차가 0.390%포인트였던 것과 비교하면 큰 폭으로 좁혀졌다.
이 같은 현상은 내년 우리나라의 경기 부진에 대한 우려를 반영한 것이란 분석이다. 김상훈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경기동행지수와 선행지수의 하락세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국고채 장단기 금리차가 계속 좁혀지고 있다”며 “시장이 내년 한국 경제의 완만한 하강세를 예상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