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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ㆍ제주도 해역서 남송 제작 때 중국 도자기 무더기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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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ㆍ제주도 해역서 남송 제작 때 중국 도자기 무더기 발견

입력
2018.12.05 16:57
수정
2018.12.05 21:0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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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신안 흑산도 바닷속에서 발견된 중국 도자기가 수중에 있을 때 모습.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전남 신안 흑산도 바닷속에서 발견된 중국 도자기가 수중에 있을 때 모습.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7월에 황제가 명위장군 도통령 탈타아, 무덕장군 통령 왕국창, 무략장군 부통령 유걸을 파견하여 탐라 등처의 도로를 살펴보게 하였다. 그리고 왕식에게 조서를 내려 관원을 보내어 이들을 인도하여 탐라로 가게 하였는데, 누군가가 탐라에서 바닷길로 가면 송나라와 일본을 쉽게 갈 수 있다고 말하였기 때문에 살펴보게 한 것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한치윤(1765-1814)이 쓴 ‘해동역사’에는 탐라(제주도의 옛 지명)가 송나라와 일본을 가는 주요 길목이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 나온다. 흑산도 바닷길도 옛 해상 교역로의 중요한 길목으로 꼽힌다. 중국 송나라 사신인 서긍(1091~1153)이 쓴 ‘선화봉사고려도경’에는 흑산도가 송나라에서 고려로 오는 항로 중 하나로 기록돼 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전남 신안 흑산면과 제주 한경면 신창리 해역에서 지난 7~9월 조사를 해 남송대(1127~1279)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500여점의 중국 도자기를 건져 올렸다. 흑산도와 제주도가 고려와 남송,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해상 교역로에 중요한 기착지였음을 확인하는 자료로 주목된다.

제주 신창리 해역에서는 밑바닥에 ‘금옥만당’ ‘하빈유범’의 글자가 새겨진 청자발 조각 등 500여점의 유물을 추가 확인했다. 신창리 해역은 1996~1998년 제주대학교와 제주박물관이 세 차례에 걸쳐 수중조사를 진행한 곳이다. 이번 조사는 바다 밑에 유물이나 선체가 추가로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진행됐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제주도는 교역을 목적으로 이동하던 이들이 날씨 등 변수에 의해 머물다 간 곳일 수 있다”며 “한중 간, 중일 간 교역에 있어서 중요한 기점이 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제주 한경면 신창리 해역에서 발굴된 중국 도자기. 이 지역에서 500여점의 유물이 발굴됐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제주 한경면 신창리 해역에서 발굴된 중국 도자기. 이 지역에서 500여점의 유물이 발굴됐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전남 신안 흑산도 해역에서 출토된 중국 도자기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전남 신안 흑산도 해역에서 출토된 중국 도자기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제보자의 신고로 긴급 조사한 신안 흑산면 해역에서는 중국 고급 도자기 산지로 알려진 ‘저장성 룽취안(龍泉) 요’(룽취안)에서 제작한 청자 접시 등 50여점의 중국도자기를 확인했다.

두 해역에서 발견된 유물은 모두 남송 대 것으로 대부분 룽취안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남송은 송나라 후기로 금나라에 북부 지방을 빼앗겨 항저우로 전도한 시기를 이른다.

룽취안에서는 북송 시대부터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청자를 생산하는 가마가 운영됐다. 중국에서 일본으로 가던 중 신안 앞바다에 침몰한 원나라 무역선 신안선에서도 룽취안 청자가 발굴됐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이전에도 신안 인근이 해상 교역로였다는 기록은 있었지만, 이번에 발굴된 유물은 신안선 유물과 시기적으로 차이가 나 새로운 자료로 의미가 깊다”고 밝혔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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