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정화-허수현 부부 콤비
베토벤 소재로 한 ‘루드윅’ 선 봬
뮤지컬로 9번째 호흡
“허수현 선생님의 곡이 정말 좋고요. 편곡 능력도 뛰어나요. 무엇보다 제가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고, 다른 작곡가에겐 못하지만 ‘곡 다시 써달라’라는 말을 감히, 아주 큰 소리로 할 수 있어요.” (추정화 뮤지컬 연출가)
“연습하다가 ‘배우들 잠깐 나가달라’ 하면 곡이 아니라는 거고, ‘커피 사겠다’고 하면 곡이 아주 좋다는 얘기예요. 작업 초반엔 추 연출가가 머릿속에 그린 음악을 알 수 없어 어렵지만 연출가의 생각이 제게 이입된 후에는 편안하게 쭉쭉 써져요.”(허수현 음악감독)
두 사람이 의기투합한 뮤지컬만 9편. ‘달을 품은 슈퍼맨’ ‘리멤버’ ‘인터뷰’ ‘스모크’ ‘은밀하게 위대하게’ 등을 합작했다. 양만 많은 게 아니다. 2016년 초연한 ‘인터뷰’는 중국과 일본에 이어 미국 오프 브로드웨이까지 입성했다. 추정화(45) 뮤지컬 연출가와 허수현(53) 작곡가는 300석이 안 되는 소극장에서 만들어내는 창작뮤지컬로 흥행과 작품성에서 모두 인정받고 있다. 남다른 콤비를 자랑하는 두 사람은 부부. ‘퇴근’ 후 시간도 함께한다. 이번에도 “서로를 쪼아가며” 만든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작곡가 베토벤을 소재로 한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루드윅’)다. 4일 서울 이화동 ‘루드윅’의 공연장인 JTN아트홀 1관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루드윅’은 베토벤이 청각장애를 딛고 대성하는 일대기를 넘어 베토벤과 조카 카를에 얽힌 ‘개인사’를 풀어낸다. 베토벤은 실제로 동생의 아들인 카를을 입양해 수제자로 키우려 했다고 알려져 있다. 베토벤의 음악이 변주돼 뮤지컬 넘버와 어우러지면서 ‘루드윅’은 대학로 관객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추 연출가와 허 작곡가는 자신들의 성격과 작업 방식을 “베토벤과 카를의 관계로 생각하며 된다”며 웃었다.
추 연출가는 배우들 사이에서도 ‘뜨겁기’로 유명하다. 그의 뮤지컬에서는 배우들이 퇴장할 틈이 없다. 공연 도중 땀이나 눈물로 인해 마이크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탓에 음향팀에서는 “이번에도 배우 퇴장이 없냐”고 물어볼 정도다. 추 연출가는 “소극장에서 적은 배우와 제작비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무대 에너지를 배우들로 채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대극장 뮤지컬은 앙상블 배우들이나 화려한 무대 세트로 주인공의 서사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소극장은 아니에요. ‘루드윅’도 극이 시작하고 23분 만에 베토벤이 권총을 자신의 머리에 들이대야 할 정도로 서사를 발전시켜야 했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 청년, 장년까지 베토벤을 3명 등장시키며 에스프레소 커피를 농축시키는 마음으로 만들었어요.”
카를을 향한 베토벤의 지나친 집착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작품 속엔 예상 밖 인물들도 등장한다. “깨진 유리가 깔린 길도 마다하지 않고 나아가는 여성상”을 원한다는 추 연출가는 마리라는 여성 캐릭터를 만들었다. 무대 위 한쪽에 놓인 피아노를 공연 내내 직접 연주하는 동시에 극의 반전까지 담당한 피아니스트도 있다. 허 작곡가는 “저도 클래식 작곡을 전공했으니 ‘선배님’ 베토벤에 헌정하는 마음으로 곡을 썼다”며 “피아노 한 대로 오케스트라의 효과를 주기 위해 편곡에도 시간이 오래 걸렸는데 피아니스트 역을 맡은 강수영 배우가 연주를 정말 잘해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신작을 다작하기보다 기존 작품이 재공연되는 모습을 계속 보고 싶다지만, 두 사람에겐 아이디어가 넘쳐난다. 추 연출가는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것을 시도해보고 싶다”며 “마음속으로 재즈 뮤지컬을 그려보고 있다”고 말했다. 허 작곡가가 재즈도 소화할 수 있을까? 그는 “전 카를이기 때문에 하라면 해야 한다”며 웃었다.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는 내년 1월 27일까지 공연된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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