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가치 있는 귀금속이자 확실한 보장자산으로 통한다. 그런데 영원히 왕좌를 지킬 것만 같던 금의 아성이 최근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지난 21일(현지시간) “지난 4개월간 팔라듐의 가격이 50%가량 상승했다”며 “금의 라이벌로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열기가 좀처럼 식을 줄 모른다”고 전했다.
팔라듐은 백금에서 추출한 은백색의 금속이다. 가솔린 자동차 엔진의 배기가스 유해성분을 걸러내는 매연감축 촉매로 쓰인다. 지난 8월만 해도 트로이온스(약 31g)당 가격이 917달러(약 103만원)로, 1,190달러(약 134만원)인 금에 한참 뒤떨어졌다. 하지만 이후 슬금슬금 오르더니 이달 5일 1,242달러(약 140만원)까지 치솟아 1,237달러(약 139만원)에 그친 금을 제치고 ‘골든 크로스’를 이뤘다. 이후 팔라듐과 금은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며 왕좌 자리를 다투고 있다. 19일 현재 팔라듐은 1,277달러(약 144만원), 금은 1,253달러(약 141만원)로 팔라듐이 근소하게 앞선 상태다.
팔라듐의 강세는 자동차 수요가 꾸준하게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 덕분이다. 공급 부족이 예상되면서 팔라듐의 인기는 좀체 식지 않고 있다. 또한 자동차 공해문제가 이슈로 부각될수록 팔라듐의 가치는 계속 높아질 수밖에 없다. 타이 웡 BMO 캐피털마켓 원자재상품디렉터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자동차 산업의 수요자들은 원하는 양의 팔라듐을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헤지펀드와 투기성 투자자들은 팔라듐에 대한 순투자를 계속 늘리고 있다.
반면 금은 맥을 못 추는 상황이다. 시장 변동성이 큰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안전한 달러와 미국 채권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달러화 강세로 인해 해외 구매자들이 금을 사려면 더 많은 돈을 내서 달러로 바꿔야 하는 데다, 미국의 금리가 계속 오를 것으로 예상되면서 금보다는 이자가 붙는 다른 자산을 선호하는 패턴으로 바뀌었다. 이로 인해 금 가격은 올 한 해 5%가 떨어졌고, 투기성 투자자들도 금 매도 주문을 늘리고 있다.
금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지만 팔라듐의 공세에 맥없이 무너질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팔라듐의 친척뻘인 백금은 2010년 들어 고공행진을 이어가며 금값을 추월했지만 이후 추락을 거듭해 이제는 850달러(약 94만원) 선으로 떨어졌다. 또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가 금리 인상 속도를 완화할 수 있다는 시그널을 시장에 보낸 상황이어서 반대로 금값이 반등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 전 세계적인 경기둔화로 안전자산인 금을 향한 관심이 다시 커지고 있는 점도 변수다.
다만 팔라듐은 거래시장 규모가 금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아 가격 변동성이 클 수 있다. 수요가 늘어 가격이 가파르게 올랐지만, 다시 공급이 늘면 언제든지 급락할 수 있는 구조다. 전 세계 팔라듐의 4분의 3가량을 러시아와 남아프리카 지역 국가에서 공급하고 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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