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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talk] “대중 대변하지 않고 자기 대변에 바쁜 래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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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talk] “대중 대변하지 않고 자기 대변에 바쁜 래퍼들”

입력
2018.12.05 04:40
수정
2018.12.05 11:07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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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이수역 폭행사건 겨냥

공연장서 비판 받고 낸 ‘웅앵웅’

“정신병” 극단적 혐오 표현

콘서트 중단… “환불해야” 비판도

래퍼 산이가 '페미니스트'와 '웅앵웅' 등 여성 혐오적이라 비판 받는 곡을 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브랜뉴뮤직 제공
래퍼 산이가 '페미니스트'와 '웅앵웅' 등 여성 혐오적이라 비판 받는 곡을 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브랜뉴뮤직 제공

가수의 막말로 공연이 중단됐다. 지난 2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SK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가요기획사 브랜뉴뮤직 소속 가수 합동 공연에서 벌어진 일이다. ‘막말 가수’는 브랜뉴뮤직 소속 래퍼 산이(33). 그는 공연에서 “아이 돈트 기브 어 X(I Don’t give a fuxx). 워마드(남성 혐오 사이트) 노(No) 페미니스트 노(No) 너네 정신병”이라는 험한 말을 쏟아냈다. 관객들은 “너나 잘해”라며 산이의 발언에 항의했고, 사과를 요구했다. 이날 공연장은 ‘성갈등’의 현장이었다. 일부 관객들은 ‘산하다 추이야(추하다 산이야란 뜻)’란 문구가 적힌 푯말을 들고 있다가 산이가 무대에 오르자 그를 비방하는 문구가 담긴 인형을 무대에 던졌다. 산이가 지난달 서울 이수역 남녀 폭행 사건을 계기로 쓴 ‘페미니스트’란 곡을 낸 것에 대한 항의였다. 산이의 ‘페미니스트’ 발표 이후 래퍼 제리케이와 슬릭은 산이를 공격하는 곡을 각각 냈다. 공연장 막말은 산이 나름의 대응이었던 셈. 산이의 공연장 막말은 과연 정당한 것인가, 왜 한국 힙합은 ‘헤이트 스피치(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 혐오 발언)’로 얼룩졌는가. 한국일보 대중문화 담당 기자들이 짚어봤다.

김표향 기자(김)= “산이가 공연장에서 자기를 비판한 여성을 향해 3일 낸 ‘웅앵웅’을 들어 보니 ‘메갈(메갈리아ㆍ남혐 사이트)’을 미국의 백인우월주의 집단 KKK에 비교했더라. 미국에서 자라 공부까지 한 산이가 KKK의 폭력성을 누구보다 잘 알텐데 너무 극단적인 혐오의 표현이었다. 혐오를 위한 혐오로 밖에 비치지 않았다.”

강은영 기자(강)= “영상으로 산이가 2일 공연에서 한 욕설을 들었다. 충격이었다. 대중 가수로 할 일은 아니었다. 돈 내고 공연 보러갔다가 난데없이 욕먹은 관객은 얼마나 황당했을까. 환불조치 해야 한다는 비판도 있다. 산이가 왜 이렇게 여성 문제에 극단적으로 대처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3대 가요기획사인 JYP엔터테인먼트 출신인 주류 래퍼 아닌가? 랩도 정말 차지게 잘했던걸로 기억한다. “

양승준 기자(양)= “가깝게는 이수역 폭행 사건 논란이 일었을 때 산이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여성이 남성에 욕하는 상황이 담긴 영상을 올리며 페미니스트 등과 충돌했다. 이 일을 계기로 곡 ‘페미니스트’가 나왔다. 산이는 2년 전부터 여성 비하 구설이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시위가 한창일 때 ‘나쁜X’을 냈는데 박 전 대통령의 실정을 여성에 대한 공격으로 풀었다고 비판을 받았다. 당사자 입장에선 ‘어 이거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다.”

김=“산이의 여성주의에 향한 과격행보가 노이즈 마케팅은 아닌 듯싶다. 그가 유튜브에 올린 영상을 보니 민감한 이슈를 얘기하는 이유에 대해 ‘사람들이 원하는 소리만 해주는 앵무새 같은 존재가 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사람들이 싫어할까봐 하지 못하는 말을 자신은 할거고 그런 게 선한 영향력으로 돌아올거라고 확신했다.”

강= “곪아있던 한국 힙합신의 여성 비하 문제가 산이를 계기로 터진 것 같다. 위너 멤버인 송민호가 Mnet ‘쇼미더머니4’에서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란 랩을 했고, 블랙넛이 여성 래퍼 키디비를 상대로 “이번엔 키디비 아냐 줘도 안 X먹어”(‘투 리얼’)라고 랩을 해 논란이 있었으니까. 여성을 향한 무자비한 랩이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버젓이 음원 사이트에 유통되는 게 현실이다. 한국 래퍼들이 유독 여성 문제에 공격적이 아닌가 싶다. 폭력성에 무감각한 업계도 문제다.”

양= “공감한다. 물론 미국 힙합곡에 여성에 대한 욕설과 비하가 넘쳐난다. 하지만 미국에서 산이처럼 주류에서 활동하는 래퍼가 페미니즘을 화두로 이렇게 과격한 곡을 낸 사례를 본 적 없다. 미국 힙합계에서의 인종 문제에 대한 혐오가 우리나라에선 성 갈등으로 나타나는 양상이다. 주류 래퍼가 낸 노래에서 ‘워마드’같은 단어가 등장했다는 게 충격이었다. 하위 문화로 여겼던 성갈등 커뮤니티가 생각보다 많은 이들의 삶에 스며들고 있는 게 아닌가란 걱정도 들고. 반대로 산이가 공개적으로 호명하면서 그 갈등을 부추긴게 아닌가란 생각도 들었다.”

강= “힙합은 저항의 음악이잖나.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그런데 한국 힙합의 날은 약자를 향하고 있다.”

김= “남성 래퍼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잘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여성이 일상에서 마주한 공포를 남성에게 그대로 투영하니 당황스러울 수도 있고 불쾌할 수 있다. 자신들을 모두 범죄자 취급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산이처럼 ‘그렇게 권리를 원하면 군댄 왜 안가’라고 이죽거리면 소통의 접점을 찾을 수가 없다.”

양= “페미니스트에게 공격당했다고 생각하는 산이 뿐 아니라 최근 부모 사기 의혹에 휘말린 도끼가 낸 ‘말조심’을 듣고도 답답했다. 래퍼들이 우리를 대변해주지 않고 자신만 대변한다. 한국 힙합이보편적인 공감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것 같다.”

강= “방탄소년단이 여느 아이돌과 달리 세계에서 주목 받은게 결국 주눅든 청년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서였다. 그런데 한국 힙합은 이야기의 텃밭이 너무 빈약하다. 돈자랑과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한 곡이 대부분이다. 사회에 대한 고민이 담긴 곡을 주류 힙합 시장에선 듣기 어렵다.힙합 음악을 주로 듣는 이들이 청소년인데 걱정도 된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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