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국회는 예산안 의결 법정시한을 지키지 못했다. 헌법에 따르면 9월 3일 국회에 제출된 470조5,000억원의 2019년 정부 예산안은 새 회계연도가 시작되기 30일 전인 12월 2일까지 국회가 의결했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도 시한을 넘기면서 2014년을 제외하고 2000년 이후 총 19번의 예산안 가운데 18번의 예산안이 법정시한을 어기게 됐다. 이른바 예산안에 대한 ‘깜깜이 심사’, 졸속 심사가 이뤄지는 매우 우려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때 졸속 예산심사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예산심의 기간이 짧다는 점을 들었다. 미국은 8개월, 영국은 4개월 등 충분한 심의기간을 보장하는데 반해 한국은 고작 60일만 주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번 심의과정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애초에 심의기간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던 것 같다. 우선 2014년 국가재정법 개정을 통해 국회의 예산안 심의기간이 90일로 확대됐음에도 불구하고 구태가 근절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다음으로 9월 3일 이후 언제든 심사를 시작할 수 있는 상황에서 실제 심사는 법정시한을 30일도 채 남겨 두지 않은 시점에서 시작됐다는 점이다. 국회 회의록에 따르면, 11월 6일 행정안전위의 예산심의 소위원회가 올해 예산안 예비심사를 위한 첫 회의였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상황이 이렇다보니 법정시한 내에 정부 예산안을 일독(一讀)도 하지 못한 채 예산심의가 진행되는 형편이다.
제도 개선을 통해 충분한 심의기간을 보장하고 있음에도 졸속 예산심의가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과연 국회가 예산안을 성실히 심의할 유인(incentive)을 지니고 있기는 한 것인가? 이와 관련, 국회와 정부 간 예산안에 대한 정보 격차 문제를 주목할 만하다. 현행 제도 아래서 국회는 정부가 예산안을 편성하는 과정에서 단 두 차례 정보 접근이 가능하다. 3월 말 예산편성지침에 대한 기획재정부 장관의 보고와 6월과 8월 사이 개최되는 당정협의회를 통해서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구체 안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거나 야당 의원을 배제한 정부와 여당 간 회의라는 한계를 지닌다. 그 결과 정부 예산안에 대해 빈약한 정보만을 지닌 국회 입장에서는 60일 또는 90일이라는 심의기간이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어차피 철저한 심의를 위해 필요한 정보를 확보하기가 어렵다면 예산안 심의를 서두를 필요성은 더욱 약해진다. 심의기간 확대만으로 해소되지 않는 정보 격차 문제가 졸속 예산심사의 근본적 원인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국회가 정부의 예산안 편성과정에서 실질적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이런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국회 상임위는 정부 각 부처에서 예산안을 마련할 때 해당 부처와 정기적인 회의를 개최하고 예산안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또 기획재정부가 부처별 예산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여야정이 함께 하는 당정협의회를 정기화함으로써 정부의 예산안 편성과정에 대한 국회 역할을 강화할 수도 있다. 만일 국회와 정부 간 예산안에 대한 정보 격차가 최근 국회의 예산안 졸속심사의 주요 원인이라면, 아마 이러한 변화가 효과적인 개선책일 수 있다.
아쉬운 것은 이러한 개혁에 국민들이 쉽게 지지할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국민의 정책적 선호를 반영하기 위해 예산안을 면밀히 검토하려는 모습을 보여 주어도 시원찮을 판에 국회가 예산안을 정쟁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는 행태에 국민들이 실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뢰할 수 없는 국회에 국가 정책의 성공과 실패의 출발점이 되는 예산안에 대하여 더 많은 권한을 줄 수는 없을 것이다. 국회 스스로 자정(自靖) 노력 없이 제도 개혁만으로 졸속 예산심사의 구태를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정훈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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