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형사 사건의 재심 결정 개시가 신속하게 이뤄지도록 검찰의 항고권 남발을 개선하는 등의 대책 마련을 법무부에 권고했다. 재심은 유죄 확정 판결에 중대한 오류가 있을 경우, 당사자 등의 청구로 시비를 다시 가리는 비상구제절차로 이번 권고는 존속살해죄로 복역 중인 무기수 김신혜씨 진정이 계기가 됐다.
3일 인권위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해 8월 인권위에 “재심 결정에 시일이 오래 걸리는 것은 부당하다”고 진정을 제기했다. 2000년 친부 살해 혐의로 무기징역형이 확정된 김씨가 15년 만인 2015년 1월 재심을 청구했으나 검찰의 항고 등으로 결정이 지연됐기 때문이다. 2015년 11월 전남 해남지원은 김씨 청구를 받아들였지만 검찰이 즉각 항고(결정에 대한 불복 신청)했고, 2017년 2월 광주고법이 검찰 항고를 기각, 사실상 재심 결정이 났지만 검찰이 재항고한 것이다.
그러나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은 조사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인권위법 30조에 따라 김씨 진정은 각하됐다. 올 9월 대법원이 검찰 재항고를 기각하면서 김씨 사건은 비로소 재심 절차를 밟게 됐다. 김씨 사건은 각하됐지만 인권위 조사 결과, 현행 제도가 검찰의 항고를 두 차례(즉시항고ㆍ재항고)나 보장하면서 재심 시작점에 서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원청구권 자료에 따르면 재심 청구 후, 재판부의 재심 결정(1차)이 나기까지 최장 7년12일이 걸렸고 재심 결정 후 검찰이 항고한 경우, 재심 결정을 뜻하는 기각 결정(2차)이 나기까지 최장 9년32일 걸렸다. 검찰이 재항고한 경우, 대법원에서 기각 결정(3차)이 나기까지 가장 오래 걸린 건 3년182일이었다. 만약 이들이 모두 동일인이라면 재심 청구 확정을 받기까지 20년 가까이 걸리는 셈이다. 인권위 관계자는 “재심 개시 결정에 대한 검사의 즉시항고권과 재항고권이 폭넓게 보장돼 당사자가 재심을 청구하면 관행적으로 항고가 두 차례나 모두 이뤄지면서 시간이 지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독일은 형사소송법을 개정해 검사의 즉시항고권을 폐지, 재심은 단 한 차례의 항고만 허용하고 일본은 우리나라처럼 검찰 항고가 두 차례 가능하긴 하지만 재항고는 헌법위반과 판례 위반사유에 해당할 때만 신청이 가능하다. 인권위 관계자는 “인권 보장과 사법정의 실현, 신속하게 재판 받을 권리 등을 보장하기 위해 재심 개시 결정 시 즉시항고권을 폐지하거나 재항고 사유 제한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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