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이 가진 물리칠 수 없는 맛이 있잖아요. 채소를 다양하게 넣는 방식도 좋고, 겨울에는 굴을 많이 넣어서 먹어요. 개인적으론 ‘굴라면’을 제일 좋아합니다. 독특한 맛이 나죠. 해물의 향기도 있고. ‘부대찌개식’일 때는 햄과 두부를 많이 넣습니다.”
6일 전화로 만난 하창수(58) 작가가 들뜬 목소리로 내놓은 ‘라면의 방법론’이다. 1987년 등단해 한국일보문학상(1991), 현진건문학상(2017)을 받은 30년 된 작가는, 어느 겨울 라면을 먹다 문득 라면의 모든 것을 소개해보기로 했다. 문학이 당대 사회와 사람 이야기라면 “라면이야말로 거기에 적합한 어떤 것”일 거라 생각했다. ‘라면에 관한 알쓸신잡’은 그렇게 나왔다.
자료를 모으고 쓰는 데 1년 반이 걸렸다. 읽은 논문은 88편, 책은 100여권에 이른다. 라면의 조상, 일본의 ‘라멘’을 알기 위해 일본 원정 취재만 두 차례 다녀왔다. 인터넷에 떠도는 희한한 레시피들도 시험 삼아 해먹어봤다. “짜장라면과 일반 라면을 섞어먹더라고요. 그런데 확실히 그런 건 젊은이들의 실험정신에 어울리지, 저한테는 참 힘들었습니다.”
‘라면 고행’ 끝에 하 작가가 다다른 결론은 “라면에 인간사가 담겼다”는 사실이다. 소소하고, 춥고, 눈물겹고, 애틋하고, 그립고, 지긋지긋한 이야기들, 그리고 과학적ㆍ사회학적ㆍ심리학적 분석까지, 인간과 라면은 서로에게 그렇게 얽혀 있다.
라면에 관한 알쓸신잡
하창수 지음
달아실 발행ㆍ234쪽ㆍ1만5,000원
이를테면, 독일 사람과 결혼해 독일에 사는 한 주부는 라면에 루콜라를 꼭 넣는다. 집안일을 해야 라면을 먹을 수 있었던 한 피아니스트는 “노동 뒤에 먹는 음식의 신성함”을 배웠다. 한 바둑 해설가는 방직 공장에 다니던 엄마가 야식으로 받아 온 라면을 숨겨두면 그걸 찾아 먹는 재미로 살았다. 어느 영양학자는 라면이 건강에 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한 사회학자는 청소년 가운데 절반이 주 3회 이상 라면을 먹는다고 조사했고, 다른 디자이너는 라면 봉지의 색채 심리학을 분석했다.
하 작가에게 라면은 과거이자 현재다. “태어나면서부터 함께 했는데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어서다. 라면의 미래는 어떨까. 그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김현종 기자 choikk999@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