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H W 부시 전 美대통령 별세
2차대전 조종사ㆍ석유 거부 출신
닉슨이 발탁… 주유엔 대사 임명
레이건의 부통령 이어 대통령 당선
걸프전에서 후세인 격파했지만
경기침체로 재선에는 실패
독일 통일ㆍ냉전 종식에도 큰 기여
조지 H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94세.
부시가(家) 대변인인 짐 맥그래스는 성명을 통해 “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며 텍사스 석유사업의 개척자이자 제41대 미국 대통령인 부시 전 대통령이 30일 밤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2012년부터 파킨슨병으로 투병해 온 부시 전 대통령은 지난 4월 17일 73년간 해로해 온 부인 바버라 여사가 9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투병하다가 7개월여 만에 텍사스주 자택에서 그의 곁으로 갔다.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최장수 기록이다. 임종을 지켜본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에 따르면 그의 마지막 말은 아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에게 건넨 “나도 너를 사랑한단다”였다.
제43대 대통령인 아들 부시 전 대통령과 구분해 ‘아버지 부시’로 불리는 그는 미국 대통령 가운데서는 몇 안 되는 연임에 실패한 대통령이지만, 역사적으로는 동서 냉전 종식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뉴욕타임스는 그에 대해 “유능한 관료이자 외교관이었다”면서 “대통령으로서는 40년간 이어져온 냉전을 종식시켰으며 소련의 해체, 동유럽의 자유화에 따라 드리워진 핵 위협도 끝낸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2차 대전을 경험한 세대로는 마지막으로 백악관을 차지한 인물로 워싱턴포스트는 그의 죽음에 대해 “한 세대의 종막”이라고 평가했다.
1924년 6월 매사추세츠주 밀턴에서 태어난 그는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18세이던 1942년 해군에 입대, 태평양 전쟁에서 조종사로 전투에 출격했다. 뇌격기(어뢰 공격기)를 조종하다 일본군에 격추돼 추락했으나 미군 잠수함에 구조되면서 2차 대전 영웅 반열에 올랐다. 정치 입문 전에는 사업가로 성공했다. 예일대를 졸업한 그는 석유시추장비회사인 드레서에서 경력을 쌓기 시작, 1965년 석유사업을 맬컴 글레이저에 매각할 때까지 석유사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1966년 텍사스주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고 2년 뒤 재선에 성공했으나 1970년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서는 낙선했다. 비록 상원의원 도전에 실패했으나 사업가 출신의 남부 정치인의 가능성을 눈여겨본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게 발탁돼 유엔 주재 미국대사로 임명된다. 이후 미국과 중국이 정식 수교할 때까지 사실상 주중 대사인 베이징(北京) 연락사무소 소장으로 일하며 중국 인맥을 쌓았다. 이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 등 여러 공직을 맡았다. 1980년 공화당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었으나 로널드 레이건 후보에게 패했다. 하지만 레이건의 요청으로 부통령 후보를 맡아 1981년부터 1989년까지 부통령을 역임했다. 이후 레이건의 도움으로 1988년 공화당 대선후보로 선출됐고 그 해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마이클 듀카키스 후보를 꺾고 제 41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현직 부통령으로서는 제8대 대통령 마틴 밴 뷰런(1836년) 이후 152년만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임기 초반 그는 파나마와 이라크에 군대를 동원해 성공을 거뒀다. 1989년 12월 파나마에서 마약 퇴치를 위해 파견된 미군 해군 장교가 파나마군 총격으로 살해당하자, 이를 구실로 미군 병력 2만여명을 투입해 파나마를 공격했다. 이후 마누엘 노리에가 전 파나마 대통령을 붙잡아 미국으로 압송했다. 1990년에는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다국적군을 주도해 1개월 만에 이라크군을 격퇴했다. 연이은 승전보로 당시 지지율은 90%에 육박했다. 1992년 재선에 도전했지만 경기침체로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문제는 경제야”라는 구호를 내세운 민주당 클린턴 후보에 패배했다. 하지만 장남인 조지 W 부시가 2000년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부시 가문’을 케네디 가문에 맞먹는 미국 명문 가문으로 만들었다. 비록 재선에는 실패했지만 탈냉전 분위기가 싹트던 당시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서기장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동서화합을 이끌었으며 독일 통일과정에서도 노련한 조율자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그의 별세 소식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각국 지도자들의 애도가 이어졌다. 트럼프 미 대통령 부부는 트위터 성명을 통해 “부시 전 대통령은 건강한 판단과 상식, 흔들림 없는 리더십으로 미국과 세계를 이끌어 냉전을 평화로운 승리로 종식했다”며 업적을 기렸다. 고르바초프 전 서기장은 “엄청난 책임감을 요구하는 대변화의 시기에 냉전과 핵무기 경쟁의 종식을 가져왔다”고 그를 추모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그와 쌓아온 우정에 영원히 감사할 것”이라고 애도했다. 부시 대통령의 장례식은 5일 텍사스와 워싱턴DC에서 각각 열릴 예정이며 11년 만에 국장(國葬)으로 엄수된다. 이 기간 유해는 의사당에 안치돼 조문이 이뤄진다. 장례식이 열리는 5일 미국 연방기관이 휴무에 들어가고 증시도 휴장한다.
이왕구 기자 fab4@hankook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