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준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개봉 한 달 만에 500만 관객을 동원한 화제의 영화 ‘완벽한 타인’은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7명의 친구와 부부가 각자 휴대폰으로 오는 모든 정보를 공유하는 게임을 하면서 전개된다. 서로 아무것도 감출게 없고, 떳떳하다고 생각하던 부부나 친구 사이에서 은밀한 사생활이 드러나면서 생기는 인간 군상들의 민낯을 보여주는 영화다. 이 영화가 주목 받는 이유는 자신과 관련 있는 모든 것들이 들어 있는 휴대폰을 매개체로 비밀스러운 자신만의 세계가 다른 사람에게 드러나고, 관객들은 그런 은밀한 사생활을 함께 즐기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뿐만 아니고 요즈음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관찰하는 내용이 대세가 되었다. 사실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관찰하는 TV 리얼리티쇼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오래된 인기프로그램의 하나였다. 미국의 한 프로그램에서는 실제 남녀 10명의 참가자가 100일 동안 외부와 차단되어, 화장실에서부터 침실까지 설치된 28개의 카메라에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방영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가상이 아닌 현실에서도 타인의 은밀한 사생활을 몰래 엿보는 것이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듯하다. 그 예로 유명 연예인들이나 저명 인사들의 사생활을 감시하고 몰래 촬영하는 파파라치라는 직종도 생겨나고,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도 훔쳐보는 몰카가 공공 장소에도 성행하고 있어, 몰카를 색출하는 방법까지 인터넷에 떠 다닌다.
이런 엿보기 증상은 자칫 성적인 부분으로 발전하기 쉬운데 지하철에서 여성들의 신체부위를 찍는 행위, 얼마 전 스튜디오에서 비공개로 촬영된 여성 모델 수백 명의 노출 사진이 순식간에 유포된 사건, 또한 20여년 전 우리 사회에 커다란 이슈가 되었던 유명 연예인의 동영상 유포도 은밀한 타인의 사생활을 몰래 보고 거기서 쾌감을 즐기는 인간 심리의 단면을 보여주는 현상들이라 하겠다.
이런 엿보기는 의학적인 측면으로 보면 관음증과 관련이 있다. 관음증은 옷을 벗고 있거나, 성행위 중인 사람을 몰래 관찰하는 행동이나 환상, 성적욕구와 관련하여 반복적으로 강한 성적 흥분을 느끼는 질환이다. 물론 이런 행위는 사회적, 직업적 또는 다른 중요한 기능 영역에 심각한 문제나 손상을 초래할 때 질병으로 분류될 수 있다.
관음증적 행동은 남성에서 약 12%, 여성에서 4% 정도가 병적으로 진단되고, 대개 청소년기에 처음 시작된다. 사춘기 시절 정상적으로 나타나는 성적 호기심, 성적 활동과 관음장애를 구별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지속 여부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최근 이탈리아 대학생들과 캐나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에 의하면 남자의 50%, 여자의 40% 정도가 성도착적인 상상이나 행동을 한다고 하고, 그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이 관음증, 노출증이라고 하였다. 이런 보고를 보면 성도착적인 생각이나 상상이 단순히 비정상적인 현상으로만 치부하기 어렵다. 스스로 불편함을 느낀다든지, 성욕과다, 동반되는 정신병리적 현상 등을 전체적으로 고려하여 판단되어야 할 것이다.
관음증적인 경향이 생기는 원인이나 뇌기능의 변화에 대해 아직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어렸을 때 성적인 트라우마를 경험했거나, 부모의 외도를 목격했다든지 또는 자신이 겪은 성적 학대 등이 관련 있다는 보고가 있다. 증상이 심하거나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라면 치료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물론 이러한 병적인 관음증을 차지하고라도 인간은 본능적으로 관음적인 성향을 조금씩은 갖고 있다. 이런 본능은 소셜미디어(SNS), 유튜브 등을 통해 자발적으로 자신의 사생활을 노출하는 요즘 문화와 맞물려 점점 진화하는 형상이다 이러한 컨텐츠들은 때로는 내가 동경하고 경험할 수 없는 대상이나 행위에 대리 만족을 주기도 하고, 남들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는 감정과 일상을 산다는 공감과 동질감을 느끼게끔 하기도 한다.
이는 어찌 보면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에서 오는 상처를 치유하는 현대인들의 자가치료적인 측면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사회에는 나의 단순한 호기심이나 쾌락을 위해, 그 존엄성이 침해 받아서는 안 되는 나와는 다른 완벽한 타인의 존재를 인지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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