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산하 한국잡월드분회가 지난달 22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직접고용 지원서를 제출하겠다면서 청와대로의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제공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방식을 둘러싼 한국잡월드 안팎의 극한 갈등이 지난달 30일 노사 합의 끝에 일단락 됐다. 자회사 채용 방식을 거부하고 본사 직접 채용을 요구했던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결국 자회사 채용을 수용한 모양새다. ‘상생발전협의회를 구성해 2020년까지 고용 및 처우 개선을 포함한 발전방안을 마련한다’는 내용이 노사 합의문에 들어간 점을 제외하면 돌고 돌아 원점으로 회귀한 것이다.

앞서 잡월드 노ㆍ사ㆍ전문가 협의회가 자회사 전환채용(고용승계) 방식의 정규직 전환 방안을 제시하자 비정규직 300여명 중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소속 140여명은 받아들이지 않고 파업, 청와대와 본사 앞 농성, 집단 단식 등으로 맞섰다. 이에 사측은 이달 1일까지 자회사 고용승계에 응하지 않으면 공개채용을 실시하겠다고 배수진을 쳤고, 결국 시한을 하루 앞두고 노사가 자회사 고용승계에 합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비용이 적지 않았다. 잡월드를 방문하려던 청소년들은 파업으로 불편을 겪었고, 단식 농성을 하다가 조합원 10명 이상이 병원으로 실려 갔다. 자회사 채용 방식에 동의했던 비정규직과 반대했던 비정규직 사이, 비정규직과 정규직 사이에서 벌어진 극심한 노-노 갈등은 앞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역시 입맛이 쓸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앞장 서서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했지만 수혜자라고 할 수 있는 비정규직이 단식 농성까지 하며 정부를 강도 높게 비난했으니 말이다.

모두에게 상처뿐인 결과가 나온 데는 노조 탓도 있다는 지적에 노조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본사든 자회사든 공공기관 일자리를 갈망하는 취업 준비생이 즐비한데 고용승계를 약속 받고도 본사 정규직이 아니면 절대 안 된다는 요구는 공감을 얻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책임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서 장밋빛 미래만 강조하고 민감한 전제 조건들은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던 정부에 있다. 정부 약속대로 정규직 전환으로 과도한 국민부담이 발생하지 않으려면 전환자 대상 직무급제 도입이나 정규직 호봉제 폐지 등 전제 조건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했지만 정부는 그러지 않았다.

정책 추진 동력이 약해진 지금 공공기관들은 비용 부담을 이유로 직접 고용 대신 자회사 방식 전환을 선택하고 있다. 이는 제2, 제3의 잡월드 사태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정부가 ‘비정규직 제로’라는 달콤한 구호만 전면에 내세우고 직무급제 도입 등 인기 없는 과제는 뒤로 미뤄둔 대가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

이성택 정책사회부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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