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실’로 들어간 내년 예산
예산소위 “감액심사 마쳤다”지만
일자리 등 상당수 ‘보류’로 남겨
증액사업 심사 시작도 못한 상태
국회 3개 교섭단체 간사 등 구성
‘소소위’서 관행처럼 예산안 처리
회의 내용 비공개로 깜깜이 심사
쪽지 예산 끼어넣기 등 비일비재
지난 1일로 내년도 우리나라 예산을 심사하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활동기간이 종료됐다. 공공기관 세습고용 국정감사, 4조원 세수 결손 등을 둘러싼 여야 갈등으로 파행을 거듭하던 국회가 결국 예산안 통과 법정시한을 지키지 못하면서 예산 심사는 여야의 비공식 협의체인 이른바 ‘소(小)소위’로 넘어갔다. 법적 근거도 없는 소수의 비공개 모임에서 470조5,000억원에 달하는 정부 예산의 밀실 심사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2일 기획재정부, 국회 등에 따르면 당초 국회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인 이날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등 3개 교섭단체의 예결위 간사들이 주축이 된 비공식 협의체 ‘소소위’를 통해 예산안 심사가 진행됐다. 3일부터는 각 당 정책위의장까지 소소위에 참여해 심사를 이어갈 방침이다.
헌법에는 회계연도 개시일 30일 전까지 국회 본회의에서 예산안을 의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해 예결위 내 예산안조정소위원회(예산소위ㆍ옛 계수조정소위)가 11월 중순부터 가동하고 예산안을 심사한다. 먼저 감액심사를 한 뒤 이후 증액심사를 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정쟁으로 예산소위에서 심사가 공전을 거듭하면서 예산안 통과 법정시한을 넘기게 됐고, 비공식 기구인 소소위에서 심사를 이어가는 상황이다. 예산소위는 감액 심사는 마쳤다는 입장이지만, 실제로는 남북협력기금, 일자리예산 등 여야 간 쟁점 사업을 포함한 감액 사업 상당수를 ‘보류’ 상태로 남겨 결정을 미룬 것으로 전해졌다. 증액 사업 심사는 시작도 못한 상태다. 소소위에서 보류 상태의 감액 심사는 물론이고 증액 심사까지 해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 관계자는 이날 “250건 안팎의 보류 항목에 대한 심사가 어제부터 오늘까지 진행되고 3일부터는 증액 심사가 이뤄질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수천 개에 달하는 증액 및 감액 사업 모두를 예산소위에서 들여다볼 물리적 시간이 없다는 이유에서 소소위는 그간 관행처럼 이어져왔다. 역대 예산 심사 과정에서 소소위가 개입하지 않은 적이 없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문제는 소소위가 국회의 공식 기구가 아니라는 데 있다. 그렇다 보니 구성 원칙도 없다. 보통 여야 예결위 간사와 기획재정부 예산실장, 국회 예결위 수석전문위원 등이 모여 예산안을 처리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가끔 기재부 2차관이 참석하기도 한다. 예산소위와 달리 회의 내용이 언론에 공개되지 않고 속기록도 남기지 않는다. 어디서 모여 논의하는지조차 비밀에 부친다. 일단 소소위가 꾸려지면 증액ㆍ감액을 주로 심사하는 소소위, 예산안 부대의견을 심사하는 소소위, 특정 주제를 검토하는 소소위 등 여러 개가 동시 구성되는 걸로 알려져 있지만 구체적 운영 과정은 이번에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극도로 폐쇄적인 밀실 심사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더구나 올해는 소소위가 심사할 건수가 예년보다 훨씬 많을 전망이다. 통상 예산안에는 감액 사업보다 증액 사업이 더 많고 보통 수천 건에 달한다. 법정시한 위반을 비판하는 여론의 눈치를 보면서 급하게 예산안을 다루다 보니 날림 심사가 불가피하다. 과거 소소위에 참여했던 한 정부 관계자는 “예결위나 소관 상임위에서 각 의원들이 증액을 제기한 사항들이라 입장 차가 크지 않은 사업은 읽고 통과시키는 게 다반사”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엑셀 자료를 가져와 한 사람이 쭉 읽고 이의 없으면 곧바로 통과시키는 방식이어서 한 건에 5초도 안 걸리는 경우가 즐비하다”고 귀띔했다.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민원성 증액 사업이나 부처 이기주의적 증액 사업이 이 과정에서 개입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세종=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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