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를 필요가 없다. 그리고 과격할 필요가 없다.
영화 속에서 정장을 입은 주인공은 늘 무리하지 않는다. 신사답게, 언제나 정숙하고 부드럽게 대한다. 물론 누군가의 뒤를 쫓거나 괴한의 공격을 받아내고 또 그를 제압할 때에는 ‘무투파’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지적이고 매너 있는’ 모습을 보이려 한다.
유려한 실루엣을 담고, 푸른 차체의 컬러를 뽐내는 재규어 F-타입 P300이 바로 그런 스타일이었다. 언제든 소리 높여 달리고, 또 역동성을 과시할 준비는 끝낸 상태지만 일상 속에서 거칠거나 과격한 모습은 결코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F-타입 P300은 일상 속에 녹아 들었다.
재규어 F-타입은 그리 큰 체격이 아니다. 트림에 따라 외장 파츠가 달라져서 그 체격은 다소 달라지지만 대부분이 유사하다.
F-타입 P300의 경우에는 4,482mm의 전장과 1,923mm의 전폭 그리고 1,311mm의 전고를 갖춰 날렵하고 세련된 감성을 연출한다. 휠베이스는 2,622mm이다. 참고로 F-타입 P300은 후륜구동에 2.0L 터보 엔진 덕에 공차 중량이 1,650kg로 F-타입 중에서도 무척 가벼운 편에 속하며 이는 향후 서술될 장점으로 이어진다.
우아한 자태의 브리티시 쿠페
재규어 F-타입은 사실 디자인만으로도 그 가치가 충분한 존재다. 유려한 실루엣과 볼륨감이 돋보이는 레이아웃, 그리고 이를 완성한 이안 칼럼과 재규어의 디자이너들의 열정이 돋보인다.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감히 고혹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아깝지 않은 모습에 더욱 감탄할 수 밖에 없는 스스로를 보게 된다.
페라리 캘리포니아가 떠오르긴 하지만 재규어, 그리고 스포츠카의 존재감이 강조된 전면부터 인상적이다. 재규어의 패밀리룩을 구성하는 프론트 그릴과 J 실루엣을 살린 헤드라이트, 그리고 ‘매력적인 곡선’이 조화를 이뤄 날렵하면서도 수준 높은 쿠페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린다. 보닛의 디테일도 만족스럽다.
측면은 재규어의 전설적인 모델 중 하나이자 ‘브리티시 로드스터’의 아이콘과 같은 E-타입의 흔적과 함께 21세기의 재규어가 추구하는 날렵하면서도 매력적인 실루엣을 곧바로 느낄 수 있다. 특히 이상적인 곡선으로 그려진 루프라인과 C 필러는 그 매력을 더욱 강조하여, 도로 위에서의 시선을 집중시키게 만든다.
물론 F-타입의 킬링 포인트는 바로 후면에 있다. ‘볼륨이라는 것이 폭발한다’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돋보이는 볼륨이 돋보이는 차체와 스포츠카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강조하는 날렵하면서도 시크한 리어 콤비네이션 램프의 만족감은 상당하다. 여기에 P300 모델에 적용되는 싱글 타입의 머플러 팁도 제법 멋스럽다.
투 톤으로 구성된 매력적인 공간
재규어 F-타입 P300의 실내 공간을 마주하는 순간 여러 생각이 들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역시 흰색의 시트는 관리가 어렵다’라는 것이다. 오랜만의 재회인데 시트의 거뭇한 모습에 ‘시간’이 느껴졌다.
참고로 F-타입 P300은 좌우대칭의 대시보드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센터페시아의 보조 손잡이 구조물 하나로 ‘운전자 중심의 공간’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입체적인 이미지를 완성한다. 여기에 아주 뛰어나진 않지만 제법 고급 소재를 대거 적용하고 주행에 대한 완벽한 주행을 구현할 수 있는 요소를 곳곳에 배치했다.
엔진 시동 및 공조 장치 사용 시 자동적으로 팝업되는 센터페시아 상단의 에어밴트와 재규어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느껴지는 스티어링 휠 등도 만족스럽다. HUD를 비롯해 특별한 아이템은 존재하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라는 생각이 머리 속을 가득 채울 정도다.
디스플레이 패널은 만족도 높은 번역과 시인성이 좋은 폰트가 반영되어 다양한 기능을 보다 손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디스플레이 패널의 배치가 사용성을 살짝 떨어뜨린다. 기능적으로는 아쉬움이 없지만 메르디안 사운드 시스템은 그 이름보다는 다소 아쉬운, 살짝 맹한 느낌의 사운드를 전한다.
전장이 다소 짧지만 2인승 모델의 특성 상 실내 공간은 제법 여유롭다 일체형 타입이고 두께가 얇은 편이지만 시트의 착좌감이 우수하고 스포츠 쿠페 특유의 낮은 포지션으로 만족감을 높였다. 레그룸은 키가 큰 운전자라도 마음 편이 앉을 수 있도록 한다. 엔트리 모델이라 하지만 F-타입의 격에 맞춰 고급스럽고 세련된 디테일이 돋보인다.
개인적으로 F-타입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면 역시 스포츠 쿠페 모델임에도 불구하고 큰 캐리어 등을 쉽게 적재할 수 있는 트렁크 공간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F-타입 P300에는 트렁크 공간은 사라지고 스페어 타이어가 자리를 잡고 있어 정말 당황스러웠다.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재규어 F-타입 P300의 심장
F-타입 P300의 보닛 아래에는 최고 출력 300마력과 40.8kg.m의 토크를 내는 4기통 2.0L 터보 엔진이 자리한다. 그리고 ZF의 8단 자동변속기를 거쳐 후륜으로 출력을 전한다. 다운사이징도 아닌 미묘한 선택처럼 느껴진다.
어쨌든 F-타입 P300은 정지 상태에서 단 5.7초 만에 시속 100km까지 가속할 수 있으며 최고 속도 역시 250km/h에 이른다. 한편 공인 연비는 9.8km/L(복합 기준)으로 출력 등을 고려하면 평이한 수준이다.
아름답고 편안하고 즐거운 F-타입 P300의 주행
솔직히 말해 F-타입 P300의 주행 성능은 아주 뛰어난 편은 아니다. 하지만 매력적이다. 놀랍게도 매력적이고, 그 매력은 단순히 쿠페라는 레이아웃을 떠나서 ‘매일’을 함께 할 수 있는 데일리카의 존재감으로 발현된다. 이렇게 매력적인 쿠페가 매일 타더라도 불편하지 않다는 것이 얼마나 큰 강점이고 이점인 것인가?
시승 차량의 주행 거리가 제법 쌓였기 때문일까? 인제니움 2.0L 터보 엔진은 제법 거칠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이 차량은 일전 영국 대사관이 마련한 트랙데이에서 VIP들을 위해 쉼 없이 서킷을 달렸던 바로 그 녀석이었다. 아마 관리가 조금 더 되었다면 보다 매끄럽고 부드러운 질감을 느낄 수 있었을 것 같다.
출력 자체는 평이하다. 스포츠 쿠페에게 있어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5.7초 만에 도달하는 건 이제 그렇게 큰 자랑은 아니다. 발진 가속이나 추월 가속, 그리고 고속 주행의 전반적인 만족감은 제법 우수한 편이다. 다만 F-타입의 매력이었던 매력적인 사운드가 대거 줄어든 것 같아 내심 아쉽다.
스포츠 쿠페라고 한다면 다이내믹한 거동을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F-타입 P300은 그런 움직임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정확히는 ‘굳이 그럴 이유가 없다’라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재규어의 쿠페는 스포티할 수 있지만 그 전에 럭셔리하고 아름다운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럴까? 재규어 F-타입 P300은 정말 부드럽고 여유로운 감성이었다. 댐핑을 조금 더 조율했다면 그 만족감이 더 높아져 어떤 상황에서도 ‘과하지 않게 물 흐르듯 코너를 타고, 또 달릴 수 있는 존재’가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그렇다고 스포츠 쿠페의 감성이 죽어 있는 건 아니다. 조향에 대한 반응은 조금 여유롭지만 분명 후륜구동 고유의 운동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대신 그 정도를 무척 부드럽고 매끄럽게 선사하며 운전자에게 ‘고유의 재미’를 선사하는 정도로 다듬어 내는 편이라 꽤나 세련된 느낌으로 다가온다.
참고로 2.0L 터보 엔진의 성과 중 하나는 효율성이라 할 수 있다. 실제 시승을 하는 중간에 자유로를 50km 달리며 그 효율성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이 주행에서 F-타입 P300은 90km/h의 평균 속도로 달렸고, 그 결과 5.7L/100km, 즉 리터 당 17.5km라는 제법 인상적이고 만족스러운 효율성을 과시했다.
좋은점: 매력적이고 부드럽고 다루기 좋은 브리티시 쿠페의 존재감
아쉬운점: 존재의 의구심이 드는 엔진, 그리고 애매한 가격 포지션
F-타입 P300, E 클래스 쿠페를 떠올리게 하다
흔히 F-타입의 경쟁 모델로 포르쉐 박스터나 BMW Z4 등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편안함을 강조하고 고급스러운 영국의 풍미를 드러내는 F-타입 P300은 이러한 ‘본격적인 스포츠 쿠페’ 보다는 메르세데스-벤츠 E 클래스 쿠페와 같은 럭셔리 쿠페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그런 럭셔리 쿠페들보다 더 매혹적인 존재감을 잊지 않는다.
한국일보 모클팀 – 김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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