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가입자 약 220명을 보유한 소형 상조업체 A사가 돌연 폐업했다. 홈페이지는 폐쇄됐고, 회사 연락망도 두절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결과, A사는 가입자 220명 중 180명이 매달 납부한 회비(선수금)를 한 푼도 은행에 예치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현행법은 상조회사가 가입자로부터 받는 선수금 중 50%를 무조건 외부기관(공제조합 또는 은행)에 예치하고 회사가 부도나거나 폐업할 때 이를 보상금으로 주도록 하고 있는데 이 같은 규제를 완전히 무시한 것이다. A사가 문을 닫으며 가입자 180명은 수년간 납부한 수십만~수백만 원의 돈을 그대로 허공에 날려버리게 됐다.
공정위가 이처럼 상조업체가 폐업 보상금을 따로 빼두지 않아 소비자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사태를 막기 위해 제도 개선을 검토하고 나섰다. 공정위 관계자는 2일 “지금은 상조업체가 매달 선수금을 받고 이중 50%를 직접 은행이나 공제조합에 넣는 구조라, 마음만 먹으면 이를 누락하고 고객 돈을 마음대로 유용할 수 있다”며 “이에 선수금이 상조업체 계좌에 들어오면 금액의 50%가 자동으로 은행이나 공제조합으로 예치되도록 자동연계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그간 ‘선수금 50% 의무예치’ 제도의 허점이 적지 않게 드러났다. 상조업체 ‘하늘지기장례토탈서비스’는 2014년 3월~2016년 12월 약 5,200건 상조서비스 계약을 체결하며 선수금 26억원 중 300만원(0.1%)만 은행에 예치하다가 공정위에 적발됐다. 2016년엔 가입자 1만5,000여명의 선수금 134억원 중 약 4억원(3%)만 은행에 적립하고 빼돌린 선수금을 개인 용도로 유용한 상조업체 회장이 기소됐다. 검찰 수사 결과 그는 상조업체와 비슷한 이름의 여행사를 세워 기존 상조회원의 소속을 여행사로 바꾼 후, 회원 수와 선수금 내역 등을 예치기관인 은행에 축소ㆍ누락해 신고했다. 2016년 7월 폐업한 ‘국민상조’도 선수금 470억원 중 실제 공제조합에 적립한 금액은 90여억원에 불과했다. 최근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이 부실 상조업체 46곳을 점검한 결과 이중 4곳이 선수금을 37~47%만 예치했다.
이에 상조업체가 애초부터 폐업 보상금에 부당하게 손을 댈 수 없도록 은행이 먼저 선수금의 50%를 떼어내 예치하는 식으로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일종의 원천징수 방식인 셈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고객이 카드로 결제하든 계좌이체로 돈을 보내든 선수금은 무조건 은행을 거치게 되는 만큼 강제 예치 제도 도입이 가능한 구조”라며 “다만 이 같은 자동연계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할부거래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금융위원회와 논의해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