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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고려 유물 한자리에… 북한 왕건상 대여는 끝내 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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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고려 유물 한자리에… 북한 왕건상 대여는 끝내 무산

입력
2018.12.03 17:44
수정
2018.12.03 19: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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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

세계 45개 기관서 유물 들여와 전시

3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 언론공개회를 찾은 관계자들이 화엄경 목판을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3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 언론공개회를 찾은 관계자들이 화엄경 목판을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려는 인쇄와 출판에서 위대한 발전을 이뤘고 철학과 종교, 과학 지식의 습득과 확산을 촉발한 ‘황금기’로 여겨집니다.”

3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대고려전’)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한 이리나 보코바 전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고려를 “예술과 문화에서 전례 없는 업적을 남긴 시대”라고 평했다.

고려(918~1392)는 다양한 민족이 공존하던 시기다. 격변을 겪으면서도 여러 나라와 활발하게 교류하며 독창적인 문화를 꽃피웠다. 국립중앙박물관이 4일부터 내년 3월 3일까지 여는 대형 전시회 ‘대고려전’은 고려 사회의 다원성·개방성을 현대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자리다. 국립중앙박물관이 고려 건국 1,100주년을 맞아 2년간 예산 12억원을 들여 준비한 행사다.

전 세계 흩어진 고려 유물이 한 자리에 모인다. 미국, 영국, 이탈리아, 일본 등 4개국 11개 기관을 포함해 총 45개 기관에서 고려 문화재 450여점을 확보해 소개한다.

법보종찰 합천 해인사에 소장된 고려 목판 '대방광불화엄경 수창년간판'. 고려 1098년 판각해 가장 오래된 화엄경 목판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법보종찰 합천 해인사에 소장된 고려 목판 '대방광불화엄경 수창년간판'. 고려 1098년 판각해 가장 오래된 화엄경 목판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전시는 총 네 가지 주제로 열린다. 1부는 고려의 수도 개경을 중심으로 다양한 물산과 교류 양상을 살펴본다. 고려의 불교문화를 주제로 한 2부에서는 경남 합천 해인사에서 이운한 고려 목판이 전시된다. 국보 제206호인 ‘대방광불화엄경 변상도 주본’, 보물 제734호인 ‘역대연표’와 ‘예수시왕생칠경 변상도’, ‘대방광불화엄경 수창년간판’ 등 4점이다.

고려 목판은 국가기관인 대장도감에서 새긴 팔만대장경판(국보 제32호)과 달리 사찰이나 지방관서에서 새긴 것이다. 이 중 1098년 판각한 ‘대방광불화엄경 수창년간판’은 920년 역사를 지닌,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해인사에 찾아가도 직접 볼 수 없는 목판으로 불교가 전파되는 경로와 광범위한 지역에서 전승됐던 기억의 역사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3, 4부에서는 고려의 차 문화와 공예 미술에 관해 살펴본다. 보스턴박물관의 은제주자와 승반(고려 12세기), 영국박물관의 청자 동화 모란·넝쿨무늬 완(고려 13세기) 등 해외에서 빌린 진귀한 고려 문화재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3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특별전 언론공개회에 북한 왕건상의 자리가 비워진 채 희랑대사좌상이 전시돼 있다. 연합뉴스
3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특별전 언론공개회에 북한 왕건상의 자리가 비워진 채 희랑대사좌상이 전시돼 있다. 연합뉴스
북한의 고려 태조 왕건상(왼쪽)과 합천 해인사에서 이운한 건칠희랑대사좌상. 두 유물은 나란히 전시될 계획이었으나, 왕건상의 대여가 무산돼 희랑대사좌상만 선보이게 됐다. 희랑대사는 왕건의 정신적 지주였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북한의 고려 태조 왕건상(왼쪽)과 합천 해인사에서 이운한 건칠희랑대사좌상. 두 유물은 나란히 전시될 계획이었으나, 왕건상의 대여가 무산돼 희랑대사좌상만 선보이게 됐다. 희랑대사는 왕건의 정신적 지주였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합천 해인사에서 이운한 보물 제999호 건칠희랑대사좌상(희랑대사좌상)이다. 국내 전해지는 유일한 목조 승려 조각상으로 고려 930년경 제작된 이래 처음으로 해인사 밖을 나섰다. 희랑대사는 태조 왕건의 정신적 지주로 후삼국 시대 수세에 몰린 왕건을 도왔던 인물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당초 북한이 소유하고 있는 고려 태조 왕건상(왕건상)을 대여해 희랑대사좌상과 나란히 전시하려 했다. 스승 희랑대사와 제자 왕건의 ‘사제 만남’을 위해 지난해부터 통일부를 통해 고려 태조 왕건상 등 북한이 소장한 문화재 17점의 대여를 추진했다. 그러나 개막 직전까지 북한으로부터 별다른 답변을 받아내지 못해 희랑대사좌상만 전시하게 됐다. 기획 의도와 달리 ‘반쪽 전시회’가 된 셈이다. 박물관의 한 관계자는 “개막 후라도 왕건상이 온다면 전시할 계획”이라며 “다른 북한 문화재도 대여 받는 즉시 교체 전시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해놨다”고 말했다.

3일 열린 언론 공개회에서 희랑대사좌상 왼쪽 왕건상의 자리는 조명만 켜진 채 비어있었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왕건상의) 빈 자리가 통일을 향한 국민의 마음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며 “왕건상이 오지 않더라도 남북 교류를 촉진하고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기를 바라는 염원의 의미로 이해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날 열린 국제심포지엄에서 유네스코 측은 왕건상 대여 불발과 관련 남북 문화 화합을 위한 가교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보코바 전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최근 남북 씨름의 유네스코 공동등재는 평화 구축 과정에서 문화적 화합이 얼마나 중요한 기능을 하는지 보여 준다”며 “박물관을 모아 상호교류사업을 펼치는 등 중개자 역할을 계속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의 일부 문화재 대여가 무산된 점도 아쉽다. 도쿄국립박물관의 ‘아미타삼존도’ ‘백의관음도’, 규수국립박물관의 ‘지장보살반가상’ 등 일본에 있는 문화재 총 6점도 대여가 불발됐다. 박물관 관계자는 “우리나라에 압류면제법이 미비한 것이 걸림돌이 됐다”고 지적했다. 압류면제법은 전시 기간 동안 정부가 한시적으로 압류를 금지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배기동 관장은 “부족한 점도 있겠으나, 이번 같은 대규모 전시는 100년 이내에는 못 볼 것”이라며 “통일이 화두인 지금, 통일국가 고려를 통해 시대적 균형을 갖추고 미래에 관해 고찰하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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