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증평대장간
영화, 드라마 소품도 만들어
농부부터 예술인, 방송국까지 찾아
“땅땅땅…”
26일 오후 충북 증평군 증평읍 장뜰시장 골목 한편에서 요란한 쇳소리가 들려왔다. 증평대장간 주인장 최용진(70)씨가 벌겋게 달궈진 쇠를 모루에 올려놓고 망치로 때리는 소리다. 이날 아침 전화로 주문받은 엿가위를 만든다고 했다. “엿장수 가위의 생명은 소리야. 찰칵대는 맑은 소리가 멀리까지 울려 퍼져야 하거든. 그러자면 쇠의 탄성이 좋고 가위 아귀가 잘 맞아야 해.” 최씨는 섭씨 1,500도가 넘는 화덕에서 꺼낸 시뻘건 쇠뭉치를 요리조리 뒤집어가며 연신 두들겨댔다. 엿가락처럼 휘던 쇠는 어느새 동글 납작한 엿가위로 변신해 있었다.
한산할 것으로 예상하고 찾아간 대장간은 의외로 붐볐다. 목수로 보이는 50대 남자가 “손에 착 감기는 끌이 필요하다”며 찾아왔고, 충주에서 왔다는 60대 남자는 약초 캐는데 쓸 약괭이 한 자루를 사갔다. 단골이라는 김덕래(68·청주시 청원구)씨는 날이 무뎌진 칼을 갈아달라고 작업용칼 부엌칼 등 각종 칼 10여 자루를 가져왔다.
관광객도 눈에 띄었다. 경기 용인에 사는 50대 부부가 “괴산 산막이옛길에 놀러온 김에 인터넷에서 주변 명소를 검색하다 찾았다”며 들렀다. 이 부부는 갖가지 연장으로 가득한 대장간 내부를 한참 둘러보더니 칼 세 자루를 구입했다. 손님이 몰리자 최씨는 신이 난 것 같았다. 즉석에서 단 30초 만에 호미 하나를 ‘뚝딱’ 만드는 기술과 무쇠에서 불꽃이 튀는 광경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날 최씨는 너무 바빠서 점심을 먹지 못했다. 대신 이웃 형님인 이현섭(81)씨가 가져온 막걸리와 김치 안주로 끼니를 때웠다. 이씨는 “저 친구, 바쁠 때는 잠시도 쉴 틈이 없고 밥 못 먹을 때도 종종 있어. 그래도 저렇게 싱글벙글 웃으며 일을 하는 걸 보면 타고 난 대장장이야”라며 큰소리로 껄껄 웃었다.
전국 대부분의 대장간이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진 요즈음, 증평대장간은 어떻게 꾸준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을까.
비결을 묻자 최씨는 “손님이 원하는 대로 뭐든 만들어주면 된다”고 답했다. 그의 논리는 대답만큼이나 간명하다. 기계화에 밀려 설 자리를 잃은 대장간이 다시 사는 길은 대량생산 시스템으로는 따라올 수 없는 ‘손끝 야문’ 연장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기계가 범접할 수 없는 분야를 공략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의 세밀한 욕구를 맞춰주는 건 기본이다.
실제 최씨는 주문만 하면 무엇이든 만들어내는 만능 대장장이로 이름 나 있다.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춘 연장도 손님들이 필요하다면 그 때 그 때 재현해낸다. 연탄집게, 무당이 쓰는 ‘무구(巫具)’, 소발굽, 기와망치, 발작두, 맷돌중쇠, 작살거름대, 물레가락, 바늘갈구리, 물통고리 등 만드는 제품도 가지 가지다. 공장 기계부품을 만들어 납품한 적도 있다. 그가 손수 제작하는 농기구와 생활도구, 석공·건축도구는 어림잡아 200여 종이 넘는다고 한다. 이렇게 다양한 물건을 만들 수 있는 건 그 만큼 눈썰미와 손재주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증평대장간 30년 단골인 한광구(75·청주시 상당구)씨는 “최씨 물건의 매력은 기계로 만든 것에서는 맛볼 수 없는 손에 착 감기는 느낌을 주는 것”이라며 “최씨는 무쇠를 진흙처럼 쉽게 다룰 줄 아는 사람”이라고 치켜 세웠다.
솜씨 좋기로 소문나면서 그의 ‘작품’은 영화와 TV에도 등장했다. KBS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 등장한 철퇴, 포졸들이 쓰던 삼지창, 망나니칼, 월도, 화포 장식품 등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한 방송사 PD의 부탁을 받고는 1,500년 전 백제왕이 일왕에 하사했다는 칠지도(七支刀)를 옛 방식 그대로 제작 과정을 시연하기도 했다. 요즘도 일부 영화제작소에서는 그를 찾아 옛 농기구, 무기류, 철제 장신구같은 소품을 주문 제작하기도 한다.
증평대장간이 문을 연 것은 44년 전인 1974년. 하지만 최씨가 쇠망치를 든 건 이보다 10년 더 거슬러 올라간다.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산골에서 태어난 그는 가정형편 때문에 어려서부터 나무를 해다 파는 등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러던 중 읍내에 다녀온 아버지로부터 “대장간 일을 배우면 밥은 굶지 않겠더라”는 말씀을 듣고 16세 때부터 대장간에서 허드렛일을 시작했다. 스무살이 되던 해 충주로 이사한 그는 충주시내에서 대장간을 운영하는 매형(30년 전 작고)에게 본격적으로 기술을 배웠다. 당시 매형은 지역에서 알아주는 대장장이였다. “뭉툭한 쇠뭉치가 담금질과 메질을 거쳐 날씬한 괭이와 쇠스랑으로 변해가는 모습이 정말 기가 막혔어. 귀신같은 매형의 기술을 모조리 전수받으려고 4년 동안 그림자처럼 쫓아 다녔지.”
남보다 빨리 기술을 익힌 그는 매형 대장간에서 독립한 뒤 증평에 자기만의 가게를 차렸다. 증평은 군생활을 할 때 인연을 맺은 곳이다. 남의 헛간을 빌려 간판도 없이 출발한 점포는 차츰 유명해지면서 자연스레 지역에서 ‘증평대장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증평대장간은 지금도 옛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쇠를 녹이는 화덕도, 망치 집게 모루 등 장비들도 수십 년 된 예전 것 그대로다. 허름한 미닫이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면 좀 어둡다는 느낌이 든다. 벽과 천정이 연기에 그을려 새까맣기 때문이다. 내부는 온통 농기구와 각종 연장으로 가득하다. 호미 낫 괭이 쇠스랑 도끼 부엌칼 과도 등이 시렁마다 수북하게 쌓여 있다. 벽과 기둥 사이를 가로지른 막대에는 영화소품 등으로 쓰이는 무기류와 장신구 등이 빼곡히 걸려 있다. 90㎡ 남짓한 공간에 진열된 기구와 연장이 수천 점에 달한다. 물건이 발 디딜 틈조차 없이 많다 보니 작업공간은 화덕 주변 3.3㎡에 불과하다. 이 비좁은 공간에서 최씨는 묵묵히 전통 방식을 고집하며 대장일을 이어왔다.
지금은 지역을 대표하는 대장간 주인으로 이름이 났지만, 그에게도 많은 시련이 있었다. 무엇보다 값싼 중국산의 범람 위기를 넘기는 게 힘들었다. ‘중국산 쓰나미’에 폐업을 고민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 때 마다 그는 새로운 아이디어 상품으로 고비를 넘겼다. 그렇게 개발한 것이 증평대장간표 ‘전통농기구 세트’이다. 이는 낫 호미 도끼 문고리 엿장수가위 등을 작고 앙증맞게 축소해 삼태기나 키 등에 모아놓은 상품이다. 이 아이디어 상품은 전통문화를 그리는 도시민에게 선물용으로 인기를 끌면서 2005년 충북도관광상품 공모전에서 은상을 수상했다. 최씨는 “충주에서 기술을 배우던 시절, 이웃에 사는 꼬마에게 손바닥만한 괭이를 장난감으로 만들어줬더니 무척 좋아했던 기억이 떠올라 선물용 농기구세트를 고안해봤는데 히트를 쳤다. 요즘엔 단체 주문이 늘고 있다”고 했다.
엿가위도 최씨의 히트 작품 가운데 하나다. 그가 엿가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엿가락 명인인 고(故) 윤팔도 선생(2017년 2월 작고)을 만나면서부터. 30여 년 전 소리좋은 엿가위를 찾던 윤팔도 선생은 소문을 좇아 증평대장간을 찾았다. 최씨의 엿가위를 사용해 본 윤 선생이 “소리가 맑고 멀리 퍼져나가는 최고의 품질”이라고 극찬하면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됐다. 이 때부터 30년 동안 윤 선생이 쓰는 엿가위는 최씨가 도맡아 제작했다. 지금은 2,3대 엿가락 기능전수자인 윤 선생의 아들과 손자도 최씨의 엿가위를 이용하고 있다. 또한 윤 선생 아들의 소개로 다른 예술인이나 엿장수들도 최씨에게 엿가위 제작을 맡기고 있다.
먹기 살기 위해 일을 시작했고 쇠를 때리는 손맛이 좋아 일을 놓지 않았는데, 명예와 영광이 뒤따랐다.
최씨는 1995년 국내 최초로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으로부터 대장간 부문 고유기능전수자로 뽑혔다. 그의 대장간은 정부가 지정한 기능 전승자의 집이 됐다. 증평군은 그와 증평대장간을 향토유적 9호로 지정했다. 군은 증평민속체험박물관에 증평대장간을 소개하는 코너도 만들었다. 여기에 대장간의 역사와 최씨의 활동 사진, 최씨가 제작한 전통 농기구, 연장 등을 전시해놓았다. ‘무쇠장인(匠人)’으로 통하는 최씨는 지역 초·중·고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전통 대장간문화에 대한 교육을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아울러 자신의 일터로 학생들을 불러 대장장이 1일 체험교실도 무시로 연다.
평생 쇠를 다루며 살아온 최씨는 “한결같이 옆을 지켜준 아내와 사회적으로 번듯하게 성장한 3남매가 고맙고 자랑스럽다”고 했다. 50년 넘도록 하루도 빠짐없이 가마에 불을 지피고 쇠를 달구고 구부리고 때리는 일을 이어온 데는 가족의 응원이 가장 큰 힘이 됐다고 회고했다.
최씨는 한 때 대장장이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이 없는 세태를 한탄하고 걱정도 많이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젠 신경쓰지 않는단다. “세상에 억지로 되는 일이 있나. 누가 시켜서 될 일이 아니야. 나야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멈출 수는 없고, 대장간을 찾아주는 손님이 있고 내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일을 할거야. 그러다 좋은 제자가 나타나면 그 때 가서 전수해주면 되겠고."
익은 쇠를 두드리는 최씨의 손에 다시 힘이 실렸다. 장바닥에 다시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증평= 글ㆍ사진 한덕동 기자 ddha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