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강사에서 교육평론가로
이범, 文정부의 교육 정책을 말하다
교육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일관되게 정책 지지도가 가장 낮은 분야다. 지난 8월 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경제와 교육 정책 지지도가 나란히 26%로 꼴찌였다. 그나마 경제는 4개월 전 비슷한 조사에서 47%였던 것이 크게 떨어졌지만 교육은 그때도 30%로 높지 않았다.
그런데 가만히 이 조사를 보면 교육 정책을 잘못하고 있다는 평가도 다른 분야에 비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제나 고용ㆍ노동처럼 지지도가 낮은 정책은 잘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50%를 넘는다. 반면 교육은 부정적인 평가가 35% 수준이다. 잘하는지 못하는지 모르겠다는 사람이 제일 많다.
교육은 제도가 워낙 복잡해서 직접 이해 당사자가 아니면 평가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부종합전형(학종), 대입제도 공론화 등 입시 정책을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고 그 여파로 장관까지 바뀌었다. 절대평가, 고교학점제 등 문재인 정부가 내세웠던 정책들이 후퇴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에서 고교학점제에 간여했던 이범(49)씨를 29일 만나 현 정부의 교육 정책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들었다. 서울대 대학원 과학사ㆍ과학철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이씨는 2000년을 전후해 ‘사교육 1번지’ 대치동 학원가에서 과학탐구 스타강사로 이름을 날렸다. 이후 교육평론가로 활동하며 진보 교육감 당선을 도왔고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도 지냈다.
-이번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국어 31번 문제가 논란이었다.
“수능은 이명박 정부 때 EBS와 연계하면서부터 쉬워지기 시작했다. 올해도 지난해보다 어려웠던 정도지 전반적으로 비슷한 경향이다. 국어 31번 문제는 문해가 지나치게 어려웠다. 반면 과학 기초지식만 있으면 문제를 읽지 않고도 답을 알 수 있어 출제상 실수로 봐야 한다. 배경 지식을 활용하면 풀기 쉬운 문제이지만 출제 취지를 생각하면 좋지 않은 문제다.”
-물리학자가 수능 수학 문제를 틀렸다느니, 영국 교사에게 수능 영어 풀어보라니 혀를 내두르더라는 이야기가 번진다.
“단지 수능이 어렵다는 것보다 구조적인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나라마다 입시가 있다. 객관식 출제는 한국을 포함해 미국, 일본, 터키 등 손꼽을 정도다. 미국, 일본만 해도 점수제 절대평가다. 수능 초기 점수 공개와 비슷하다. 그러다 2010년대 들어 우리는 완전 상대평가로 바뀌었다. 원점수가 없고 표준점수를 알려주고 석차 등급만 나온다. 만점자가 너무 많으면 안 되는 구조다. 한 문제만 틀려도 2, 3등급이 되니 문제를 꼬아 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대입정책 방향이 수능 반영 비율을 늘리는 쪽으로 났으니 ‘불수능’ ‘물수능’ 논란이 더 커질 수 있을 것 같다.
“김상곤 체제의 교육부는 수능 절대평가를 지향했다. 그 중에서도 등급제 절대평가다. 절대평가는 두 가지 장점이 있다. 우선 합리적 과목 선택이 가능해진다. 중요 과목인데도 물리나 경제 선택 비율이 낮다. 대부분 점수 깔아줄 사람이 많은 쪽으로 가게 된다. 제2외국어는 거의 코미디 수준이다. 세계적으로도 입시가 절대평가인 것은 합리적 선택을 하라는 거다. 어떤 과목을 좋아하거나 향후 대학 전공과 연관됐다면 그 과목을 선택하라는 얘기다.
두 번째로 변별력은 떨어지지만 체감 경쟁이 낮아진다. 변별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신을 섞거나, 면접을 허용하는 기술적 보완이 가능하다. 점수제 절대평가제를 이용해 ‘우리 공대는 동점자가 나오면 수학이나 과학 원점수를 활용하겠다’는 것도 방법이다. 김 장관 체제에서 이런 기술적 검토는 하지 않고 그냥 학종을 통한 교육 혁신의 길로 가려다 정치적인 역풍을 맞은 거다.”
-학종은 최근 숙명여고 사태로 불신이 더 커졌다.
“교육부가 학종 개선안을 내놓았지만 별로 손질한 것이 없는 수준이다. 숙명여고 사태 경우도 내신만이 아니라 수상 경력 등 여러 활동 이력이 불공정하게 관리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도 교육청과 경찰이 시험 부정만 조사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학종의 공정성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걸 문제 삼는다고 공교육 불신이라고 받아 치는 것은 본말전도다. 내신 잘 반영해야 공교육 충실해진다고 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일 수도 있다. 내신을 입시에 전혀 반영하지 않는 나라도 있다.”
-내신 없는 입시를 보는 나라가 어디인가.
“영국과 프랑스다. 그런데도 우리보다 훨씬 나은 공교육을 한다. 이유는 두 가지다. 입시가 논술형이다. 자기 생각 쓰는 것도 많다. 책 읽고 토론하고 글 쓰는데 그게 입시 교육이다. 입시 위주 교육이 안 좋다는 건 미국식 관념이다. 영국, 프랑스는 대놓고 고교에서 입시 교육을 한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는 교사에게 우리보다 훨씬 많은 기회가 주어져 있다. 교사가 교과서도 쓴다. 얼마든지 다양하고 창의적인 시도를 할 수 있다. 전체 시험 문제가 똑 같은 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몇 나라나 될 것 같나. 한국과 일본뿐이다. 반마다 창의적으로 달리 교육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시험 문제가 같으니까. 한국과 일본은 개인에게 권한을 주지 않는다. 집단주의 체제다. 창의적인 교육은 교사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데서 출발한다.”
-입시 제도의 틀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말인가.
“단기적으로는 어렵고 중장기로 가야 하는데 국가교육위원회 만든다고 뚜렷한 결론이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입시를 논술형으로 바꾸는 것은 반드시 시도했으면 좋겠다. 해법은 세 가지인데, 하나는 공교육 내에서 객관식 입시를 논술형으로 바꾸어야 한다. 지금 같은 논술시험이 아니라 유럽식 과목별 논술형 시험 말이다. 그리고 교사에게 기회를 주는 혁신을 해야 한다.
또 일반고를 줄여야 한다. 특성화고가 너무 적다. OECD 평균 직업계 고교 비율이 45%인데 우리는 마이스터고, 특성화고 합쳐도 20%가 안 된다. 일반고는 이름만 바뀌었지 유럽식 제도인 아카데믹 커리큘럼(학문 교과)을 가르치는 과거 인문계 학교다. 그런 교육을 받아야 할 학생이 과연 80%나 될까. 그 과정이 적성에 안 맞는 아이들이 고교에 즐비하다. 교육부가 30% 이상으로 직업교육 늘린다고 재작년에 발표했는데 최근 알아보니 아무것도 안 하고 있더라.”
-입시난을 완화하고 창의교육을 실현하자는 진보 교육의 모토가 후퇴한다는 지적이 많다.
“2013년 국회 의원실에서 처음으로 당시 문재인 의원을 독대했다. 2012년 대선 때 여러 분야를 공부해 어느 정도 파악했는데 경제와 교육은 모르겠다고 하더라. 나중에 보니 김상곤 전 장관이 교육 분야 외주를 받은 셈이 된 거다. 김상곤은 독특한 위상이 있다. 개인이 아니라 진보 교육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러니 그 세력에 교육 정책을 위임한 격이다.
이 세력의 편향이 있는데, 우선 대중의 불신에도 불구하고 학종을 통해 교육개혁의 물꼬를 터보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청와대나 민주당 정치인들 사이에서 학종 강화를 두고 찬반 갈등이 심했다. 현 정부의 교육 정책이 처음부터 하나가 아니었던 거다. 특히 정치인 몇몇이 강하게 반발했다.
또 한가지는 혁신학교가 좋은 모델이긴 하지만 일종의 문화운동이지 아직 시스템 개혁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 과정을 일일이 제시하고, 교과서는 정부가 만들어 주고, 모든 반 시험문제가 똑같다. 개학 일주일 앞두고 몇 학년 무슨 과목 담당할지 알려주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나는 메가스터디에서 주입식 입시교육 할 때도 두세 달 전부터 준비했다. 일주일 전에 뭘 해야 할지 알려주고 창의적인 교육을 하라는 건 언어도단이다. 혁신학교는 운동으로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시스템은 여전히 혁신을 방해하는 채 그대로다.”
-진보교육을 주제로 책을 쓰고 있다던데 어떤 메시지를 담나.
“진보교육이 갈라파고스에 있는 것 같다는 내용이다. 그들은 교육적 가치가 정치에 부정당했다고 생각한다. 여의도에서는 ‘김상곤 왜 저러냐’라고 하는데 진보 교육 쪽에 가보면 ‘우리 김상곤 장관이 좋은 정책 실현하려는데 민주당이, 청와대가 가로 막는다’고 한다. 정치란 원래 누구든 발가벗겨 근본적인 질문을 하는 자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치를 무시해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시민운동 오래 한 분들은 자신들이 올바르고 정치는 그걸 실현하는 도구라는 오해를 한다. 정치에 의해 부당하게 부정당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또 하나 우리 교육에는 미국식 편향이 보수나 진보 공히 너무 심하다. 입학사정관제 같은 게 대표적이다. 유럽에 가서 독서 이력, 수상 실적 반영하자면 아무도 못 알아 듣는다. 점수 위주로 뽑는 게 안 좋다는 관념도 미국식이다. 유럽은 내신도 입시도 다 점수로 지지고 볶는다. 점수로만 평가할 수 없고 다면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도 미국식 관점이다. 유럽은 수백 년간 점수 가지고 잘 해왔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