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망을 KT에 전적으로 의존해온 NH농협은행이 KT아현지사 통신구 화재로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 농협은행은 KT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 등 법적 대응도 검토 중이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NH농협은행은 영업점 주 회선(유선)과 유사시를 대비한 백업용 보조 회선(유선)을 모두 KT 통신망으로 사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주 회선을 A사로 쓰면 보조 회선은 B사로 사용해 위험을 분산하는 것과 달리 농협은행은 통신망을 전적으로 KT에 의존한 셈이다.
이는 농협이 농민과 농촌을 기반으로 설립된 금융기관이란 특성이 반영됐다. 농협은행은 전국에 1,150개 지점을 보유하고 있고, 제2금융권인 지역 농ㆍ축협(4,700여개)까지 합치면 전체 영업망이 6,000개에 육박한다. 그 중 70% 이상이 시골 농어촌에 있다. 도서벽지에도 통신망을 깔아 국내 전화ㆍ통신사업을 도맡아 해온 KT를 이용하게 된 이유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경쟁입찰을 통해 주 회선 통신망 사업자는 지난 2013년, 보조 회선은 2015년 각각 5년 기간으로 KT와 계약한 상태”라며 “한 업체가 주 회선과 보조 회선을 모두 맡으면 유사시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만 KT측이 ‘특정 지역 장애 시에도 회선을 우회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고 있다’고 설명해 이를 믿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난 24일 발생한 KT아현지사 통신구 화재로 NH농협은행은 마포 신촌 충정로 일대 9개 영업점 내부 통신과 현금입출금기(ATM) 수십여대에서 장애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직원들은 주말에도 비상 출근했고 25일 오후 늦게 겨우 통신망을 복구했다. KT의 설명대로라면 자동적으로 보조 통신망이 작동해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이번 화재가 평일에 발생했다면 영업점 업무도 마비됐을 것”이라며 “KT측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KT아현지사는 통신시설 4개(A~D) 등급 중 D등급이어서, 백업용 회선이 구축되지 않았다. KT 관계자는 “마포 서대문 용산 은평구 일대의 광범위한 지역이 한꺼번에 장애를 겪으며 우회망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주 회선 통신망 사업자 계약이 만료됨에 따라 이미 우선협상대상자로 KT가 다시 선정돼 현재 양측간 협상이 진행중이라는 데 있다. 이 사업은 농협은행과 단위 농협ㆍ축협 등 지점의 전산망을 더 빠르게 고도화 하는 것으로, 앞으로 5년간 1,200억원이 투입되는 대형 사업이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사업의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해 KT와 협상을 진행해왔는데, 관련 내용을 다시 한번 살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농협은행이 너무 안일했던 것 아니냔 지적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통신망 이중화는 위험을 분산하는 것이 기본인데 농협은행은 이를 간과한 것 같다”며 “권역별 통신망 이중화 등 다각적인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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