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웅열 코오롱 회장이 28일 경영 퇴진을 선언했다. 사회적 물의를 희석하려거나 말 못할 외압에 떠밀린 게 아닌, 온전한 자의적 결정인 것으로 알려진다. 이 회장은 이날 사내 행사 말미에 연단에 올라 “내년부터 회사를 떠난다”며 “앞으로 그룹 경영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그룹 회장직과 지주사인 ㈜코오롱과 계열사의 모든 직책에서 사임한다.
23년 동안 코오롱을 이끌어온 이 회장의 전격 퇴진이 당장 코오롱 오너 소유구조나 경영 근간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이 회장은 여전히 그룹 핵심 계열사를 지배하는 지주사 지분의 50.4%를 보유하고 있다. 앞으로도 그룹 영향력이 계속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그의 ‘자의적 조기 퇴진’을 주목하는 것은 그 결정이 재벌 오너 회장의 재임 관행에 익숙한 우리 기업문화를 돌아보는 신선한 자극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퇴진 메시지에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덕분에 특별하게 살아왔지만, 그동안 금수저를 물고 있느라 이가 다 금이 간 듯하다”고 말했다. 재벌가 후손의 ‘정해진 운명’이 반드시 좋은 것도 아니며, 꼭 그렇게 해야 할 필요도 없다는 활달한 인식이다. 또한 오너 회장으로서의 일이 ‘금수저를 물고 있는 것’에 치우친다면, 그런 식의 인생을 보내고 싶지 않다는 속내를 내비친 것이다. 이어진 “청년 이웅열로 돌아가 새롭게 창업의 길을 가겠다”는 이 회장의 유쾌한 각오는 기업인의 개척 정신을 드러낸 것 같아 기대가 된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올해 만 63세인 그가 기업 환경의 급속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앞장서 달리다 한계를 느꼈다는 점과 자신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고백한 부분이다. 이 회장은 “산업 생태계 변화의 물결에 올라타지 못하면 도태된다”며 “내가 스스로 비켜야 진정한 (내부)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실 능력 유무와 상관없이 오너 경영 체제 아래서 변화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이 회장이 ‘오너 독단’의 폐해를 경계하며 스스로 그 그물을 제거한 것은 기업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 회장이 내린 결정의 성과는 남은 이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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