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그린란드 북부에서 야외 조사를 하던 중 어디선가 “피욧, 피욧” 하고 날카롭게 우는 멧새의 소리가 들렸다. 재빨리 카메라를 꺼내 소리를 따라다니며 새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도감을 뒤적이며 확인해보니, 머리에 진한 초콜릿 빛 깃털이 있는 긴발톱멧새(Lapland bunting) 수컷이었다. 한국에서도 이따금 관찰되는 겨울철새이지만 북그린란드에선 기록된 적이 없는 새였다. 긴발톱멧새의 영어 이름을 구성하는 라플란드(Lapland)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북부 지역을 뜻한다. 번식지는 북유럽에서 아시아와 아메리카 대륙으로 넓게 펼쳐 있다. 그린란드에선 서쪽 툴레(Thule)와 동쪽 자켄버그(Zackenberg)에서 드물게 기록된 적이 있지만, 아직 북부에서는 보고된 적이 없었다.
야외조사를 마무리할 무렵엔, 호숫가에서 붉은배지느러미발도요(Red Phalarope)와 새끼 네 마리를 만났다. 지느러미같은 발로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아 물 속에서 소용돌이를 일으켜서 떠오르는 작은 수서동물을 먹는다고 알려진 조류다. 여름철 북그린란드에 종종 나타나기도 했지만 번식이 보고된 적은 없다. 이제까진 그린란드 북동쪽 게르마니아 랜드(Germania Land)에서 기록된 것이 가장 고위도 번식 관찰이었다.
그린란드 인근 해안이 따뜻해지면서 조류의 번식지가 점차 북상한 것일까? 북극이 따듯해지면 원래 살고 있던 동물들은 서식지를 잃고 사라질 수도 있지만, 북극권 언저리에 있던 동물들은 오히려 북쪽으로 서식지를 옮길 수도 있다.
스웨덴 엘마하겐 박사 연구팀는 온난한 곳에 사는 붉은여우와 추운 곳에 사는 북극여우의 분포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조사했다. 지난 25년간 보고된 문헌들을 종합한 결과, 유럽과 아시아, 아메리카 대륙에서 붉은여우가 북극여우를 밀어내며 서식지를 넓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붉은여우는 풍부해진 툰드라 지대를 따라 북상하고 있으며, 북극여우의 서식지는 점차 북쪽으로 후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극의 온난화는 바다에 사는 동물들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지난 9월, 캐나다 허드슨 만 북서쪽 해안에서 갑자기 혹등고래 한 마리가 발견됐다. 이 부근에선 관찰된 적이 없는 고래가 처음으로 나타나자 사람들은 북극 수온 증가와 생태계 변화의 징조가 아닐까 의심하고 있다. 혹등고래 외에도 북극에서 흔히 관찰되지 않았던 종들이 출현하는 빈도가 최근 들어 점차 늘고 있다. 날카로운 이빨로 다른 고래나 물범을 사냥하는 범고래 역시 북극 바다얼음이 크게 감소하면서 흰고래와 일각고래를 사냥하기 위해 북극해를 찾고 있다. 향유고래는 뭉툭한 사각형 머리에 부드러운 왁스같은 기름이 가득 차 있어서 차가운 물 속에선 조직이 딱딱해지고 생리 기능이 저해된다고 알려져 있었다. 따라서 북극해에선 매우 드문 고래종이었으나, 최근 북극의 수온 상승과 얼음 감소로 인해 관찰 횟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온난화로 인해 어떤 동물들은 서식지를 넓혀가고 있다면 그 동물들에겐 더 잘된 일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생태계 변화 속도는 너무 빠르기 때문에, 오랜 시간에 걸쳐 누군가는 살아남고 누군가는 사라지는 자연스런 과정이라고 보긴 힘들다. 북극으로 이동한 동물들 역시 원래 살던 서식지가 변화함에 따라 이동한 것에 불과하며, 지금의 변화는 결국엔 모두에게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이원영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