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등 7곳 내년부터 가동중단
1만4000여명 감축” 전격 발표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최대 규모
호황인데도 이례적 몸집 줄이기
표밭에서 뒤통수 맞은 트럼프는
“그들에게 많은 압력 가하겠다”
지역 정치인ㆍ노동자 반발에도
바라 CEO “군살 빼고 민첩하게”
미국의 거대 자동차기업 제너럴모터스(GM)가 26일(현지시간) 북미 5곳, 해외 2곳 등 7곳의 공장을 내년부터 가동 중단하고 1만4,000여명 인력을 감축하는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을 전격 발표했다. 이번 계획은 경영위기에 터진 사후 처방이 아니라 시장의 미래를 보며 선제 대응한 조치라는 점에서 한국의 구조조정과 사뭇 다르다. 특히 블루칼라 계층을 지지 기반으로 삼아 일자리 창출을 전면에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면 충돌까지 감수하는 상황이다. 정치권과 노조의 반발에도 ‘건강할 때 미래를 대비하겠다’는 GM의 구조조정이 어떤 파장을 낳을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GM이 이날 가동 중단을 선언한 5곳 북미 공장은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오하오이주 로즈타운, 캐나다 온타리오주 오샤와의 조립공장 3곳과 미시간주 워런과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2곳의 변속기 공장이다. 이 공장들에는 모두 6,700여명 노동자들이 근무 중이다. GM은 해외 공장 2곳은 특정하지 않았다. GM은 아울러 간부급 25%를 포함해 사무직도 15%(8,000여명) 감축할 계획이라고 밝혀 1만4,000여명을 구조조정 대상에 올렸다. 이는 GM 북미 사업장 전체 인력(12만 4,000여명)의 11.2% 수준으로서 금융위기로 파산 위기를 넘기던 2009년 이후 최대 규모다. GM은 이를 통해 2020년말까지 연간 60억 달러(약 6조 7,740억원)의 비용을 절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09년과 달리 미국 경제가 호황이고 GM 경영이 위기 상황이 아닌데도 대규모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는 점에서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적 파장도 만만찮다. 특히 구조조정이 집중된 오하이오, 미시간은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표밭인 ‘러스트 벨트’의 대표지역이어서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그야말로 뒤통수를 맞은 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메리 바라 GM 최고경영자(CEO)와 통화한 사실을 전하며 “좋지 않다. 기분이 나쁘다” “나는 매우 거칠었다” 등 불편한 심기를 연신 드러내며 “우리는 그들에게 많은 압력을 가할 것이다. 상원 의원들과 그 외 많은 사람이 있다”고 즉각 GM 때리기에 나섰다. 그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도 “중국 내 자동차 생산을 멈추고 오하이오에 새 공장을 열 것을 촉구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전미자동차노조(UAW)도 이날 “모든 법적 조치와 단체 교섭권 등을 통해 맞설 것”이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도 이날 GM의 조치에 실망감을 표하며 감원 시 해당 근로자들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과 노조의 반발이 뻔한데도 GM이 메가톤급 폭탄을 던지고 나선 것은 ‘체력이 있을 때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바라 CEO는 이날 “자동차 산업은 전기차나 자율주행차 등으로 급격히 변화하고 있고 GM은 이에 적응해야 한다”며 “회사와 경제가 강한 지금이 이에 대처하기에 적절한 시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GM이 중단키로 한 조립공장 3곳은 쉐보레 크루즈ㆍ볼트ㆍ임팔라, 캐틸락 CT6, 뷰익 라크로스 등 모두 세단 차량을 생산하는 곳이다. 세단 차량은 지난 수년간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를 선호하는 북미 소비자들의 선택에 밀려왔다. AP통신은 10월 미국에서 판매된 차량의 65%가 트럭이나 SUV로 GM의 구조조정은 이런 변화를 반영한다고 분석했다. 회사 실적이 본격적으로 악화하기 전에 사양길에 접어든 사업 부문을 선제적으로 덜어내는 수술을 택한 것이다.
GM은 선제 대응으로 비축한 에너지를 미래 혁신에 투입한다는 포석이다. 바라 CEO는 “이번 조치는 GM이 자율주행차와 전기차 분야를 선도하기 위해 군살 없이 민첩해지도록 만들려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날 뉴욕증시에서 GM 주가는 전날보다 4.79% 올랐다. 투자자들이 GM의 조치에 긍정적으로 반응했다는 뜻이다.
GM의 체질 개선 계획은 그러나 상당한 진통을 수반할 수 밖에 없다. 2009년 미국 연방정부 구제금융 지원을 받고 회생했다는 점에서 사회적 책임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노동자들은 충격에 휩싸여 시위에 나섰고, 지역 정치인들도 공화ㆍ민주당 가릴 것 없이 “기업의 탐욕”(셰러드 브라운 오하이주 민주당 상원의원) 등으로 맹비난하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뿐만 아니라 의회도 각종 규제 조치를 동원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GM이 노조와의 단체 교섭에서 노조의 양보를 일부 얻는 대가로 일부 공장들은 다시 가동을 재개할 수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내다봤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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