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소 판결에 앙심 70대 남성 범행
김명수 대법원장이 탄 출근 차량이 대법원 앞에서 화염병 습격을 당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다행히 즉시 진화돼 대법원장 신변에 이상은 없었지만 최근 사법부 불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유사 테러라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서울 서초경찰서에 따르면 27일 오전 9시6분쯤 김 대법원장을 태운 관용차 에쿠스리무진이 서초동 대법원 차량검색기를 통과하기 위해 잠시 멈췄다. 1인 시위자 서너 명 틈에 끼어 정문 오른쪽 인도에서 서성이던 남모(74)씨가 9시8분쯤 갑자기 시너가 든 500㎖ 페트병에 불을 붙여 차에 던졌다. 불은 차량 보조석 뒷바퀴에 옮겨 붙었으나 현장에 있던 청원경찰이 소화기로 15초 만에 껐다. 차체에 직접 불이 붙었다면 자칫 큰 피해로 이어질뻔했다. 남씨는 9시14분쯤 청원경찰에 의해 현행범으로 경찰에 인계됐다. 경찰 이송 과정에서 그는 “내 권리를 찾기 위해서”라고 외쳤다.
경찰 조사 결과 강원 홍천군에서 돼지를 사육하던 남씨는 유기축산물부분친환경인증 재심사 탈락 뒤, 정부 상대 민사소송에서 3심까지 모두 패소하자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3개월 전부터 대법원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면서 대법원장 차량번호와 출근시간을 미리 확인했다”는 남씨 진술을 감안하면 홧김이라기보다 계획범죄에 무게가 실린다. 남씨는 이달 16일 3심 판결을 앞두고 천막 시위로 바꿨고, 최근엔 김 대법원장 퇴근 차량에 뛰어들다 제지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남씨 가방 안에는 시너가 든 페트병이 4개 더 있었다. 시너는 전날 을지로 일대 페인트가게에서 구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구체적인 범행 동기와 공범 및 배후 여부를 수사한 후 화염병사용등의처벌에관한법률 위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사고 내내 차에서 대기했던 김 대법원장은 정상 출근 뒤 수원지법 안산지원 방문 등 이날 일정을 모두 소화했다.
3부 요인(국회의장 대법원장 국무총리)을 노린 유사 테러에 이들을 24시간 경호하는 경찰도 비상이 걸렸다. 경찰청 관계자는 “대법원과 대법원장 공관 등 주변에 정보관을 더 늘려 배치하고, 돌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각급 법원에 핫라인(Hot-line)을 구축하는 등 후속 조치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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