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뻔한 얼굴인데...” 영화 ‘살인의 추억’(2003)의 마지막을 강렬하게 장식했던 소녀가 있다. 책가방을 매고 차분한 어투로 송강호에게 범인의 얼굴을 설명하던 그 소녀. 얼마 전 종방한 MBC 드라마 ‘내 뒤에 테리우스’에서 두 아이의 엄마이자 ‘경단녀’를 연기했던 배우 정인선(27)이다. 정인선을 비롯해 요즘 잘 나간다 싶은 배우들은 아역 출신들이다. 탄탄한 연기력으로 변신을 거듭하면서 시청자에게 볼거리를 선사하고 있다.
지상파 방송의 드라마가 시청률 10%를 넘기기 힘든 현실에서 ‘내 뒤에 테리우스’는 선전했다. 정인선은 아줌마 연기에 첫 도전해 호평을 받았다. 동네 이웃 주민으로 나오는 배우 김여진과 정시아에게 ‘아줌마 수업’을 받으며 캐릭터를 만들었다. 정인선은 두 배우의 초대로 집을 방문하고, 자녀의 태권도장까지 함께 다니며 주부들의 일상을 엿봤다. 인터넷 맘 카페에도 가입해 게재 글들을 읽으며 “엄마 연기의 ‘꿀팁’으로 활용”했다.
배우 박은빈(26)과 남지현(23)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두 사람은 발랄한 면모로 드라마의 성공을 이끈 공통점이 있다. SBS 드라마 ‘백야 3.98’(1998)로 데뷔한 박은빈은 KBS ‘명성황후’와 ‘천추태후’, MBC ‘상도’와 ‘선덕여왕’ 등 사극에서 아역배우로 활약했다. 최근 JTBC 드라마 ‘청춘시대’ 시즌1, 2편에 출연해 최고시청률 4.1%를 기록하며 성인 연기자로 안착했다.
남지현의 내공도 만만치 않다. 남지현은 ‘선덕여왕’에서 어린 덕만 공주로 시청자의 눈도장을 받았다. 당시 14세였던 그는 사막에서 넘어지고 뒹구는 연기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시청률 40%대의 KBS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2014)에서 시골에서 상경한 강서울 역을 맡아 성인 배우로 발돋움했다. tvN 드라마 ‘백일의 낭군님’으로 시청률 10%를 넘기며 방송가를 놀라게 했다.
이태리(25)와 박지빈(23)은 월화드라마 왕좌를 놓고 경쟁을 펼쳤다. 이태리는 지난 20일 종방한 JTBC 드라마 ‘뷰티 인사이드’에서 상사의 실수를 따끔하게 질타하는, 똑 부러지는 비서 역할로 주목 받았다. 그는 SBS 시트콤 ‘순풍산부인과’(1998)에서 미달이의 친구 정배를 연기했었다. 본명 이민호 대신 이태리라는 예명으로 활동 중이다.
한때 톱스타 아역배우였던 박지빈은 방영 중인 MBC 월화드라마 ‘배드파파’에서 악역을 맡아 열연하고 있다. MBC 사극 ‘이산’에서 총명한 어린 정조를 연기하던 그는, ‘배드파파’에선 제약회사 대표로 출연해 거친 욕설로 협박을 일삼는 냉혈한이 됐다.
김경남 대중문화평론가는 “아역 출신 배우 유승호 김유정 김소현 등은 이미 스타급 대우를 받고 있다”며 “‘연기 잘하는 20대 배우’ 기근에서 이들의 활약이 방송과 영화계에 활력소가 되고 있다”고 기대했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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