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는 ‘피동사’와 ‘사동사’가 있다. 피동사는 주체가 다른 힘이 행하는 동작을 당하는 것을 나타내는 동사로, ‘먹히다’ ‘잡히다’ 등이 있다. ‘토끼가 사자에게 먹혔다’와 같이 쓰이는데 주체인 ‘토끼’가 다른 힘인 ‘사자’가 행하는 ‘먹는 동작’을 당한다는 뜻이다. 반면 사동사는 주체가 남에게 어떤 동작을 하도록 하는 것으로, ‘먹이다’ ‘앉히다’ 등이 있다. ‘엄마가 아이에게 밥을 먹였다’라는 문장은, 주체인 ‘엄마’가 대상인 ‘아이’에게 밥을 ‘먹는 동작’을 하도록 했다는 뜻이다. 이 두 문장에서 동사가 뜻하는 것은 모두 ‘먹는 동작’으로, ‘먹다’가 기본 동사이다. 이 ‘먹다’에 피동 접미사 ‘-히-’, 사동 접미사 ‘-이-’를 붙여서 ‘먹히다’ ‘먹이다’라는 피동사, 사동사를 만든 것이다. 그래서 피동사와 사동사의 중심 의미는 같고 동작의 주체 등에서만 차이가 난다.
이처럼 대개 피동사와 사동사는 기본 동사 의미에 피동, 사동의 뜻만 더하지만, 간혹 기본 동사에는 없는 새로운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널리다’와 ‘붙이다’가 그렇다. ‘널리다’의 기본 동사인 ‘널다’에는 ‘물건 따위를 펼쳐 놓다’라는 뜻이 있다. 그래서 ‘줄에 빨래를 널었다’라는 문장과 ‘줄에 빨래가 널려 있다’라는 문장이 모두 가능하다. 그런데 ‘널리다’에는 이 외에 ‘여기저기 많이 흩어져 놓이다’라는 뜻도 있다. 이는 ‘널다’에는 없는 뜻으로, ‘방에 책이 널려 있다’는 자연스럽지만 ‘방에 책을 널었다’는 안 되는 것이 이 때문이다. ‘붙이다’도 마찬가지여서 ‘번호를 붙이며 앉다’에 쓰인 ‘붙이다’의 의미는 ‘붙다’에는 없다.
피동사, 사동사가 기본 동사에서 나왔지만 스스로 의미를 확장한다는 점이 꽤 흥미롭다.
이운영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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