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화해를 위한 차원”
24개 위원국 만장일치로 결정
씨름이 사상 처음으로 남북 공동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 됐다. 문화유산에선 작은 통일이 이뤄진 셈이다.
문화재청은 “아프리카 모리셔스 포트루이스에서 열린 제13차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에서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남북이 등재 신청한 씨름을 통합해 등재하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26일 밝혔다.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심사는 28일부터지만, 정부간위원회는 사안의 특수성을 고려해 이례적으로 이날 씨름 공동 등재 안건을 처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간위원회는 “남북의 씨름이 그 연행과 전승양상, 공동체에 대한 사회적ㆍ문화적 의미에 공통점이 있다”고 판단해 24개 위원국 만장일치로 공동등재를 결정했다. 위원회는 “전례에 없던 개별 신청 유산의 공동 등재를 결정했다"며 "평화와 화해를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우리나라는 ‘대한민국의 씨름’(전통 레슬링)을,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씨름’(한국식 레슬링)을 각각 등재 신청했다. 지난달 29일 무형유산위원회 산하 평가기구가 남북한의 씨름에 각각 등재 권고 판정을 내리면서 등재가 확실시됐다. 남북은 등재 권고 판정 이후 최근 남북 화해 분위기를 타고 공동 등재를 추진해 왔다.
명칭은 북한이 신청한 영문 표기를 먼저 세우고 남한 영문표기를 뒤에 붙여 ‘씨름, 대한민국의 전통 레슬링’(Traditional Korean wrestling, Ssirum/Ssireum)으로 확정했다.
통상 공동 등재를 하려면 각각 제출한 신청서를 철회한 후 공동합의신청서를 다시 작성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린다. 회의 개최일이 임박해 공동 등재가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다. 하지만 정부간위원회는 남북한이 신청한 씨름의 내용이 사실상 같다고 판단해 이례적으로 공동 등재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씨름은 2014년 남북이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공동 등재 신청을 하려다 2015년 북한이 단독 신청하면서 무산된 바 있다. 그러나 “무형유산이 아닌 남성 중심 스포츠 관점으로 신청서가 서술됐다”는 이유로 북한의 단독 등재는 보류됐다. 남한은 2016년 유네스코에 단독으로 등재를 신청했고, 북한은 2017년 신청서를 수정해 재도전했다.
남한은 지난 4월 1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각각 등재 신청한 씨름을 공동 등재하자고 북측에 제안했다. 이어 10월 문재인 대통령이 오드리 아줄렌 유네스코 사무총장과 만나 공동 등재 의지를 밝혔다. 이후 평양에 파견된 유네스코 사무총장 특사를 통해 북한이 동의하면서 공동 등재 절차가 급물살을 탔다.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올 상반기 제안했을 때는 북한에서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최근 문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보도 등을 통해 확인되면서 북한이 적극 호응하게 된 듯하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정부가 북한과 유네스코와의 협력을 통해 이뤄낸 성과”라며 “국제사회의 적극적 협력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남북 문화유산 교류에 새로운 계기를 마련했다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남북한은 앞서 아리랑과 김치 담그기(남한은 김장)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각각 따로 등재했다. 씨름 공동등재로 남한은 20번째, 북한은 3번째 인류무형문화유산을 갖게 됐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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