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당 의원들 개정안 발의
대법, 작년에 4만여건 사건 접수
심리 없는 상고 기각 부작용 늘어
고법에 ‘상고심사부 설치안’ 추진
| 상고심 개혁 방식에 이견도
상고허가제, 긍정적 의견 많지만
변호사들 집단 반발 가능성 높아
상고법원ㆍ대법관 증원 목소리도
지난해 대법원에는 4만6,412건의 사건이 접수됐다. 재판을 하지 않는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13명 대법관(대법원장 포함)을 기준으로 대법관 1명당 3,570건, 1년 내내 휴일 없이 일해도 1명당 하루 10건씩 사건을 마무리해야 하는 셈이다.
이런 적체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고등법원에 별도 심사기구를 두는 ‘상고허가제’ 도입 법안이 여당 의원들 주도로 국회에서 발의됐다. 상고심(대법원 재판) 개혁은 앞선 두 명의 대법원장(이용훈ㆍ양승태)이 모두 실패한, 사법부의 해묵은 ‘뜨거운 감자’다. 여당의 법안 발의에 따라 사법농단 수사가 마무리될 내년 이후 이어질 상고심 개편 논의도 급물살을 타게 됐다.
/그림 2[저작권 한국일보]주요국의 상고 제도_송정근 기자
◇대법관 1명당 3,570건… 대안 찾을 시점
금태섭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 12명은 26일 상고허가제를 내용으로 하는 ‘상고심 절차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개정안 핵심은 각 고등법원에 상고심사부를 설치하고, 여기서 사건을 대법원에 보낼지를 결정하도록 했다.
국회가 상고심 개혁에 본격적으로 손을 댄 이유는 빠른 속도로 늘어난 사건 탓에 대법원이 미국처럼 최고법원이자 정책법원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법관 수는 그대로인데 사건만 급증하면서, 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심리불속행 기각’이 남발되는 부작용이 커진다. 대법원의 충실한 검토를 기대했던 재판 당사자 입장에서는 이유도 모르고 기각 선고를 받는 것이다. 기각이 결정된 구체적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재판이 끝나 국민들 사이에 사법불신이 확산되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돼 왔다.
◇유력했던 상고법원안 사법농단 후폭풍 좌초
현재 상고심 접수 건수가 대법원이 ‘처리 용량’을 넘어서, 상고심에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대부분 법조인과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다. 다만 △상고법원(대법원과 별도로 상고심을 전담하는 법원) 도입 △대법관 증원 △상고허가제 등의 대안 중 어떤 식으로 이 문제를 풀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대법원은 제5공화국 출범 이후부터 상고허가제를 도입했다가, 1990년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지적이 일면서 상고 제한을 폐지해 모든 사건을 접수받고 있다. 미국 영국 독일 등 주요 사법선진국이 어떤 형태로든 상고허가제를 도입해 최고법원이 주요 사건에 집중적으로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지만, 이 제도를 도입하면 국민들의 재판받을 권리가 침해받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제2안인 상고법원은 △대법관들은 정치ㆍ사회 주요 사건만 심리하고 △일반 상고 사건은 상고법원에서 심리한다는 방안이다. 양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을 추진하다 사법농단 사태를 일으킨 만큼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지만, 여전히 검토할 만한 대안이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김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상고허가제는 심리불속행과 마찬가지로 심리가 부실하게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며 “국민들이 충실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한다는 점에선 별도로 상고법원을 설치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강조했다.
◇대법관 증원도 대안… 대법원도 “검토가능” 선회
제3안인 대법관 증원은 법원 밖에서 지지 받는 방안이다. 대법관을 26명으로 증원하는 개정안이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다. 그간 반대입장을 보여온 대법원도 최근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국회에서 “충분히 검토 가능하다”며 긍정적인 입장을 내비친 바 있다. 서울고법 한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에선 상고허가제에 대한 긍정적인 의견이 많지만 대법원에 올라가야 새로 수임료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변호사들의 집단 반발이 예상된다”며 “대법원과 정치권이 얼마나 반대 의견을 설득해 나갈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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