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생겨도 연락할 수단 끊겨 혼자 사는 장애인들 공포에 벌벌
“언제 응급 상황이 벌어질 지 모르는데….”
서울 마포구에 사는 시각장애1급 강한새(27)씨는 24일부터 이틀간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였다.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로 갑작스럽게 집에서 휴대폰과 인터넷이 모두 작동하지 않았던 것. 유일한 장거리 이동수단인 장애인콜택시를 사용할 방법이 없고, 활동보조인 퇴근 이후 갑자기 몸에 이상이 생겨도 보호자와 연락할 수단도 딱히 찾기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자율신경에 문제가 있어 호흡이나 체온 조절이 잘 안 되는 희귀난치병까지 있다는 강씨는 “활동보조인이 없었다면 화재 사실조차 모른 채 공포에 떨었을 것”이라며 “특히 혼자 사는 장애인은 통신이 끊기면 외부와 연락할 수단이 아예 없다”고 말했다.
장애인들이 KT 통신구 화재로 발생한 ‘IT 블랙아웃(정보통신 대규모 불통 사태)’에 대한 불안과 불편을 일반인에 비해 갑절로 호소하고 있다. 기본적인 이동마저 제한을 받는 상황이라 혹시 모를 위기에 대응할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일부는 ‘생명의 위협까지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이들에겐 무엇보다 물리적 고립이 고통스럽다. 휴대폰으로 현 위치와 목적지로 가는 방향을 파악하는 시각장애인의 불편은 생각 이상이다. 누군지도 모를 행인에게 길을 묻거나, 아예 이동 자체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사고 가능성은 그만큼 커진다. 화재가 난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에서 모임을 가지기로 했던 한국시각장애대학생회 소속 학생 50여명은 예상 못한 상황에 어려움을 겪었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모임회장 박인범(23)씨는 “휴대폰 작동이 안 돼 참석을 포기한 사람도 10여명”이라며 “회원들이 길을 잃고 헤맬까 봐 역에서 수십 분 서 있기도 했다”고 말했다.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위치를 찾는 것도 시각장애인에겐 고역이다. 통신 두절 상태에서 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정확한 재난 정보를 얻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외부로부터 도움의 손길을 쉽게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서울 용산구에 거주하는 지체장애2급 이용석(51) 한국장애인총연합회 정책실장은 “혹시나 싶어 112와 119에 전화를 걸었지만 먹통이었다”며 “통신이 끊긴 상태라도 최소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이 정비돼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화재 여파로 장애인 편의제도마저 멈췄다. 서울시각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장애인콜택시는 24일 서울 서북 지역 운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택시에 설치된 단말기가 KT였기 때문이다. 센터 관계자는 “택시 사용 신청을 접수해도 택시기사가 콜을 받아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장애인들이 이동에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고 했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2014년 SK텔레콤 통신장애 당시에도 뇌병변장애1급 장애인이 길 한복판에서 활동보조인과 연락이 두절돼 곤란을 겪었다”며 “IT 블랙아웃 상황에선 장애인이 가장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많은 장애인이 인터넷 등에 의존해 생활하고 있는 만큼 안전한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선 통신망이 정상 작동하는지 상시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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