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하고 싶으면 전남에 물어보라 할 정도로 끈끈한 팀이었는데...”
허정무 프로축구연맹 부총재가 말끝을 흐렸다.
프로축구 K리그1(1부) 전남 드래곤즈는 24일 안방에서 대구FC에 1-2로 지며 최하위(12위)로 떨어져 내년 K리그2(2부) 강등이 확정됐다. 1994년 창단 후 28년 만에 처음 맞게 되는 치욕이다. 2013년 승강제 실시 이후 기업구단이 승강 플레이오프(1부 11위vs2부 최종 2위)도 못 거치고 바로 강등 당한 건 전남이 처음이다.
전남의 몰락은 충격적이다. 전남은 정규리그 우승은 한 번도 못했지만 1997년 준우승을 비롯해 4위 5차례 등 늘 중위권 그룹에서 안정적인 성적을 내왔다. 특히 허정무 부총재가 지휘봉을 잡고 있을 때는 FA컵에서 3번(1997ㆍ2006ㆍ2007)이나 정상에 오를 정도로 강했다. 전남을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은 허 부총재는 2007년 말 국가대표 사령탑에 선임돼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원정 첫 16강이라는 새 역사를 썼다. 지금 베트남 대표팀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박항서 감독도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전남 사령탑을 맡았다.
‘캐논슈터’ 노상래, ‘마스크맨’ 김태영 등 개성 넘치는 선수들도 여럿 전남을 거쳐 갔다. 2002년 한일월드컵이 낳은 최고 스타 ‘진공청소기’ 김남일도 당시 전남 소속이었다. 전남은 포항 스틸러스와 함께 ‘화수분 축구’로도 이름을 떨쳤다. 프로연맹이 K리그 전 구단에 유스 팀 운영을 강제한 2009년보다 6년 빠른 2003년부터 이미 광양제철남초-제철중-제철고로 이어지는 유스 시스템을 구축해 윤석영(28ㆍ서울), 지동원(27ㆍ아우크스부르크), 이종호(26ㆍ울산) 등을 배출했다.
2016년 5위를 차지해 상위그룹(1~6위)에 들었던 전남은 지난 해 10위로 간신히 강등을 면하는 등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올해 유상철 감독이 새로 부임했다가 성적 부진으로 8월 중순 자진 사퇴했다. 전력강화실장이었던 김인완 감독대행이 지휘봉을 물려받았지만 반전에 실패했다. 하태균(31)과 허용준(25) 등 주력 선수들이 시즌 내내 부상에 시달렸고 외국인 선수 마쎄도(26)와 완델손(26)도 기대 이하였다. 올 여름 이적 시장 때 외국인 선수 교체와 전력 보강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외면한 끝에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받았다.
전남 특유의 끈끈함과 간절함도 사라졌다는 지적이다. 프로연맹이 발표한 지난 해 K리그 구단 연봉 지급 현황에 따르면 전남은 약 45억 원으로 1부 12팀 중 9위였지만 인건비를 덜 쓴 대구(39억), 인천(35억)보다 경기력이 더 안 좋았다. 전남은 선제골을 내준 경기에서 여지없이 무너졌고 반대로 어쩌다 선제골을 넣은 경기에서는 비기거나 역전패했다. 허 부총재는 “과거 전남은 화려한 스타는 없어도 끝까지 물고 늘어져 상대를 부담스럽게 했다. 올해는 이런 모습이 사라져 솜방망이 같더라”고 쓴 소리 했다. 전남은 지난 4월에 10위로 떨어진 뒤 8월부터 11~12위를 오갔고 이후 단 한 번도 한 자릿수 순위를 회복하지 못했다.
강등 이후도 걱정이다. 전남은 모기업인 포스코로부터 ‘쌍둥이 구단’인 포항과 비슷한 지원금을 받아왔으나 2부로 떨어지면서 금액이 대폭 깎일 거란 우려가 나온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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