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그룹 퀸은 숱한 명곡을 남겼다. 리드 보컬이자 천재 싱어송라이터로 손꼽히던 프레디 머큐리는 지난 1991년 세상을 등졌다. 에이즈 투병 사실을 고백한 그가 폐렴 등의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날 때, 45세의 젊은 나이였다. 기자 역시 어린 시절의 일이라 그의 대단한 음악성을 피부로 느낄 기회가 없었고, 남겨진 노래들도 직접 찾아 듣기보단 매체를 통해 흘러나올 때 귀동냥으로 듣는 게 전부였다.
'보헤미안랩소디'를 접한 2030 관객들은 대부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 영화를 통해 깊은 감명을 받고, 퀸의 음원을 끊임없이 재생하며 뒤늦게 그를 기리고 있는 것. 어쩌면 프레디 머큐리라는 인물의 흥미로운 탄생 과정과 철저한 고독을 영화로 먼저 만났기에 남겨진 노래들이 더욱 아프게 와닿는지도 모른다.
극중 프레디 머큐리를 연기한 라미 말렉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브레이킹 던' '니드 포 스피드' '박물관이 살아있다: 비밀의 무덤' '미스터 로봇' 등에 출연한 그는 안정된 연기력을 자랑하지만 국내 관객들에게 인지도가 높은 배우는 아니었다. 사실 이번 영화에서 보여지는 모습(특히 돌출된 치아)은 실제 프레디 머큐리에 비해 지나치게 희화화된 느낌도 있다. 하지만 그의 몸짓과 눈빛에는 영혼이 담겼고, 덕분에 주인공의 심리가 고스란히 관객들에게로 전달된다.
메리(루시 보인턴)와의 절절한 사랑도 그렇다. 운명처럼 첫눈에 반해 연인이 되지만 프레디는 서서히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닫는다. "내가 양성애자 같다"는 고백에 메리는 슬픔을 억누르며 "넌 게이"라고 단호하게 알려준다. 반지를 빼려는 메리에게 달려가 곁에 있어달라고 애원하는 프레디. "나에게 원하는 게 뭐야?" "거의 모든 것"이라는 두 사람의 대사가 심금을 울린다.
메리는 사랑으로 그의 곁을 지키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기고 자신의 삶을 찾아간다. 매니저 폴(엘렌 리치)은 점점 프레디를 고립시키고, 프레디는 철저한 고독 속에 갇힌다. 매일 파티와 술과 마약에 찌든 일상을 보내던 그는 기댈 곳을 찾지 못하고 외롭게 방황한다. 그러다 현실을 직시하게 된 프레디는 "날파리가 꼬일 때 내가 썩었다는 걸 느낀다"며 폴을 가차없이 내쫓는다.
밴드와의 결별과 재결합, 다시 무대에 오르기까지 겪는 프레디의 심적 고통이 함축된 전개 속에서도 부족함 없이 전달된다. 후반부 '라이브 에이드'(Live Aid) 무대에 선 퀸은 폭발적 카리스마로 관객과 교감하고, 이때 흘러나오는 노래들은 프레디의 심정을 대변하는듯해 너무나 가슴 아프다.
'라이브 에이드'는 1985년 7월 13일에 개최된 대규모 공연으로, 밥 겔도프와 밋지 유르가 에티오피아 난민의 기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금 마련을 목적으로 기획했다. 일명 '범지구적 주크박스' 콘셉트로,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관중 약 7만 2000 명)과 미국 필라델피아의 존 F. 케네디 스타디움(관중 약 9만 명)에서 공연됐고 일부는 시드니와 모스크바에서도 이루어졌다.
'보헤미안 랩소디'를 관람한 관객들은 당시 퀸의 실제 모습이 담긴 무대 영상을 찾아보면서 다시 한 번 그때의 감동을 되새기고 있다. 폭발적 무대 매너와 목이 터질 듯 열창하는 프레디 머큐리의 모습이 영화가 주는 감동과 맞물려 더욱 배가된다.
실제로 영화 한 편이 누군가의 일생을 낱낱이 파헤치긴 어렵다. 때론 과장되거나 미화될 수도 있고, 극적 양념이 쳐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보헤미안 랩소디'가 진한 여운을 남기는 건, 명곡이 지닌 힘과 배우들의 혼을 담은 연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공허하고 슬픈 라미 말렉의 눈빛이 퀸의 노래를 재생하는 순간마다 다시 떠올라 더욱 감정을 이입하게 만든다.
지난 24일 '보헤미안 랩소디'는 약 40만 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동원했다. N차 관람 열풍에 힘입어 이뤄낸 결과다. 한동안 '퀸 감성'에 젖어지낼 것만 같은 요즘이다.
유수경 기자 uu8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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