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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사색] 교육의 공영화를 위하여

입력
2018.11.26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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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립유치원 비리 파동은 필연 

 과도한 사립의존 교육이 문제 

 교육의 국가책임 대폭 늘려야 

역사에는 때로는 사소한 것들이 많은 것을 이야기할 때가 많다. 사립유치원 비리사태가 그러하다. 일부가 어린이 식비 등으로 쓰라고 준 정부지원금으로 성인용품을 구매했다는 보도는 유아교육의 한심한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비극적인 것은 이 같은 비극이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육아와 교육이 국가의 책임이고 공적인 것이라고 생각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설 유치원들이 유치원을 수지맞는 투자와 비즈니스로 생각하고 정부가 시설투자에 상응하는 이윤을 보장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실 우리처럼 교육에 있어 사립의 비중이 큰 나라는 많지 않을 것이다. 초등학교는 그렇지 않지만, 유치원서부터 중고등학교,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사립의 비중이 엄청나게 높다. 유치원의 경우 국공립의 수가 많이 늘어났다지만 원생 수용능력에서는 아직도 25%수준에 머물고 있다. 현실이 그러하니 사립유치원들이 원아들을 볼모로 폐업을 위협하며 좌지우지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립중고등학교와 대학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많은 곳에서 “이런 곳이 과연 교육기관인가” 의심이 들 정도로 한심한 재단의 만행이 비일비재로 벌어지고 있다.

박근혜는 대학의 반값등록금을 대선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뒤 우리나라의 대학 등록금이 세계적으로 비싸다는 통계를 제시하며 대학들에 대대적인 감사를 벌이고 등록금인하를 압박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대학들이 등록금을 인하하고 수년간 동결했다. 그러나 이는 잘못이다. 아니 반만 맞는 것이다. 우선 우리 대학등록금은 분명히 국제적으로 비싸다. 그러나 유럽 등 많은 나라들은 대학이 대부분 국립이고 거의 등록금이 없기 때문에 사립대학의 비중이 큰 우리나라를 이들과 비교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사실 사립대학의 비중이 높은 미국은 우리나라의 비싼 대학등록금이 헐값이라고 느낄 정도로 엄청나게 비싸다. 반값 등록금 정책도 마찬가지다. 반값 등록금정책은 맞다. 아니 틀렸다. 맞는 정책은 유럽처럼 대학교육의 무상화이다. 최근의 중간선거와 관련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보수적인 미국에서까지도 18세~29세의 유권자들은 58%가 대학의 무상교육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아직 고등학교 교육을 무상화하지 않은 유일한 국가라는 부끄러운 현실을 고려해 대학교육의 무상화는 논외로 하더라도, 박근혜식의 반값 등록금정책은 틀린 것이다. 이는 등록금 삭감의 부담을 대학에 전가함으로써 대학들이 교수채용을 중단하거나 개설강의수를 줄임으로써 교육의 질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박근혜식이 아니라 반값등록금에 따라 어려워진 대학의 재정을 국가가 부담하는 대신 이 같은 지원을 받는 사립대학들에 대한 사회적 통제를 강화하여 대학교육을 공영화하는 방식으로 전환시켜야 했다. OECD 국가들은 고등교육재정을 국가가 66% 부담하고 있는 반면 우리는 절반수준인 36%만을 부담하고 있다. 얼마 전 교수단체들이 국내총생산의 0.58% 수준인 고등교육예산을 OECD수준인 1.1%로 올리라는 시위를 했다. 최근 시간강사의 처우를 개선하라는 법이 통과되자 각 대학들이 시간강사를 대량해고하려 있는 바, 정부가 고등교육예산을 늘려 대량해고에 따른 차세대 학문기반의 붕괴를 막아야 한다.

과거 경제수준과 국가재정이 열악한 가운데 교육은 해야 하니 우리가 사립교육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이해한다. 또 사립학교들이 우리의 교육입국에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도 상당한 경제발전을 한 만큼, 교육예산을 확충하여 교육을 공영화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언제까지 어린이 식비를 빼돌려 성인용품이나 사는 사립유치원에 아이들을 맡길 것인가? 헌데도 정부지원금에 대한 공공통제를 강화하는 사립유치원 3법을 자유한국당이 발목을 잡고 있으니 더 무슨 말을 하겠는가?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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