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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식 수비’로 코트 평정한 오지영 “강서브보다 리베로가 내 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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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식 수비’로 코트 평정한 오지영 “강서브보다 리베로가 내 적성”

입력
2018.11.23 18:33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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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영. KOVO제공
오지영. KOVO제공

‘질식 수비’. 말 그대로 숨이 막힌다. 공격수가 분명히 강타를 때려 넣었는데도 정확한 수비가 이뤄진다. 공격수로선 도대체 어디로 공을 때려야 할지 답답하다. 시쳇말로 죽은 볼도 살아 올라온다. 그래서 질식 수비다.

올 시즌 여자프로배구 KGC인삼공사 리베로 오지영(30)의 플레이가 바로 그렇다. 2라운드 막바지인 23일 현재 수비 1위, 리시브 2위, 디그 2위로 활약하며 팀이 다크호스로 떠오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인삼공사 팀원들 역시 1라운드 MVP로 오지영을 꼽았다. 지난해에도 수비 1위, 디그 3위, 리시브 3위로 활약했다.

팬들은 ‘오지구영~’이라는 별명을 선사했다. 야무지고 실속 있다는 뜻의 ‘오지다’에 그의 이름을 섞었다. 팬들도 그의 명품 수비를 인정한다는 뜻이다. 지난해 올스타전에서 유니폼 등에 ‘오지구영’이라 새기고 나갔는데 반응이 좋았다. 오지영은 “요즘엔 어린이 팬들도 ‘어, 오지구영~‘이라고 인사한다”면서 웃었다.

KGC인삼공사 리베로 오지영이 22일 대전 인삼공사 훈련장에서 자신의 배구 롤모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주형 기자
KGC인삼공사 리베로 오지영이 22일 대전 인삼공사 훈련장에서 자신의 배구 롤모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주형 기자

사실 나이나 경력에 비해 그의 이름 석 자가 팬들에게 알려진 건 얼마 되지 않는다. 고등학교(전주 근영여고) 졸업 후 수비 전문 ‘리베로’로 2006년 한국도로공사에 입단했지만, 팀에는 국가대표 최고 리베로 김해란(34ㆍ현 흥국생명)이 있었다. 강력한 서브를 장착해 팀의 ‘원포인트 서버’로 가끔 코트에 나섰고, 김해란이 부상으로 빠지면 그 자리를 메우기도 했지만 주전 경쟁에 밀린 후보였다. 특히 2년 전인 2016~17시즌을 앞두고는 임의탈퇴 신분으로 배구단을 떠났다. “정신적으로 너무 지치고 힘들었다”는 이유였다. 이후 배구는 쳐다보지도 않은 채 한 시즌을 통째로 쉬었다.

하지만 2017년 6월 서남원 KGC인삼공사 감독으로부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보자”는 전화가 왔고, 바뀐 팀에서 다시 배구공을 잡았다. “몸은 떠나 있었지만, 마음은 배구가 그리웠나 봐요. 코트에 서니 친정에 돌아온 기분이었어요.” 복귀하자마자 주전 리베로 자리를 꿰차며 대활약했다.

오지영(가운데)이 팀원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분위기를 살리고 있다. KOVO제공
오지영(가운데)이 팀원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분위기를 살리고 있다. KOVO제공

오지영은 팀의 ‘엄마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주장이자 리그 내 유일한 동기인 한수지(30)가 야전 사령관 격으로 팀원에게 돌격 명령을 내린다면, 경기가 잘 안 풀릴 때 팀원들을 다독이면서 활력을 불어넣는 일은 오지영의 몫이다. 그런 의미에서 도로공사에서 8년간 한솥밥을 먹었던 김해란을 ‘롤모델’로 삼았다. 배구 기술은 물론이거니와 팀이 어렵고 힘들어 분위기가 처졌을 때, 어떻게든 분위기를 살리는 모습까지 김해란의 모든 것을 닮으려 노력한다고 했다. 김해란 얘기가 나오자 오지영은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 보따리를 한 가득 풀어냈다. “리베로란 위치는 공격수보다는 팀을 이끌기에 부족하거든요. 그런데도 해란 언니는 코트 위에서 말 그대로 ‘작은 거인’이에요. 언니의 리더십과 정신력을 보고 배웠고, 앞으로도 계속 보완해 나갈 겁니다. 팬들이 최근 제 실력을 인정해 주시는 것도 따지고 보면 다 해란 언니 덕이라 생각해요.”

한때 팬들에게 그의 이름을 각인시켰던 ‘원포인트 서버’로서의 미련도 있을 법한데 오지영은 “리베로가 나에게 더 적합한 자리”라고 잘라 말했다. 오지영은 도로공사 시절 서브 하나로 국가대표에 뽑힐 정도로 강력한 서브를 장착하고 있다. 지난 2010년 2월 올스타전 서브퀸 선발대회에서 시속 95㎞의 강서브로 신기록을 작성했는데, 이 기록은 8년이 넘도록 깨지지 않고 있다. 또 2014년 2월 흥국생명전에서는 연이어 5개의 서브에이스를 성공시키며 팬들을 열광시켰다. 이 역시 역대 최다 연속 서브 득점 기록이다.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 포수 김민식(29)의 열렬한 팬이기도 하다. 배구 리베로가 그렇듯, 야구에서 포수 역시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눈에는 띄지 않는 자리다. 그런 곳에서 묵묵하게 자기 몫을 해 내는 모습이 멋지다고 했다. 특히 팀을 옮긴 뒤 제 기량을 발휘하게 된 상황이 자신과 비슷해 더욱 애착이 갔다. 그래서 “꼭 프로야구 시구를 해 보고 싶다”고 했다. “기회가 된다면, 여성 시구자로는 가장 빠른 공을 김민식 선수 미트에 꽂아 볼 생각입니다. 남들보다 어깨가 강하잖아요.”

대전=강주형 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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