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우리나라의 순상품교역조건지수가 급락세를 이어가며 11개월 연속 내렸다. 우리가 상품 1단위 수출대금으로 수입할 수 있는 상품량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로, 이는 국민 실질소득 감소와 경상수지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23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10월 무역지수 및 교역조건’에 따르면 지난달 순상품교역조건지수는 전년동월(101.78)보다 8.8% 떨어진 92.78을 기록했다. 1년 전엔 상품 100개를 수출한 돈으로 102개 가까이 수입할 수 있었는데, 이젠 수입 가능한 상품이 93개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줄었다는 의미다. 특히 지수 하락폭은 6월 이래 7~9%대로 확대되면서 2011년 이래 가장 심각한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다만 수출물량이 한달 만에 반등하며 전년동월 대비 25.8% 늘어난 덕에 전체 수출금액으로 수입 가능한 상품량을 뜻하는 소득교역조건지수는 14.7% 향상됐다.
순상품교역조건 악화는 유가 상승 영향이 크다. 최정은 물가통계팀 과장은 “원유 가격 인상에 따라 수입가격이 수출가격보다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 순상품교역조건지수가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유가가 상승하면 석유화학제품 등 원유 가공 수출품 가격도 오르지만, 석유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 경제 구조상 수입품 가격 상승폭이 훨씬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교역조건 악화는 무역을 통한 실질소득의 감소로 이어진다. 최근 국민 실질소득 지표인 국민총소득(GNI) 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을 뜻하는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에 크게 못 미치는 것도 교역조건 악화와 관련 있다. 실제 올해 1, 2분기 GDP 증가율(전년동기 대비)은 각각 2.8%였지만, GNI 증가율은 1.9%와 1.4%에 그쳤다. 한은 관계자는 “교역조건 변화는 지표경기(성장률)과 체감경기(GNI 증감률)의 주된 괴리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이렇다 보니 수출이 늘어도 내수를 부양하는 효과가 제대로 발휘되지 않고 있다. 지난달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도 한 위원이 “교역조건이 크게 악화되면서 수출 증가가 내수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상당폭 제약되고 있다”며 “이에 따라 내수의 성장기여도는 하락하고, 국민경제의 실질적 구매력을 나타내는 GNI와 명목소득 증가율이 둔화되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