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차기 대통령 선거가 이제 2년 앞으로 다가왔지만 미 민주당에선 아직 도널드 트럼프(공화당) 대통령에 맞설 대항마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워싱턴 정가와 미 언론에서 거론되는 민주당 후보자들만 해도 무려 30여명에 달한다. 바꿔 말하면 뚜렷한 선두주자가 없는 셈이다. 지난 11ㆍ6 중간선거에서 하원 다수당 지위는 민주당에 넘겨줬지만, 상원 수성(100석 중 최소 52석 확보)에 성공한 공화당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재출마가 기정사실화한 것과는 대비된다.
이런 가운데 미국 정치권이 ‘트럼프 대 오바마’의 대립 구도로 굳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물론, 미국의 수정헌법은 대통령의 중임까지만 허용하고 3선은 금지하고 있어 이미 두 차례 임기(2009년 1월~2017년 1월)를 마친 오바마 전 대통령의 2020년 대선 출마는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민주당 진영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반 (反)트럼프’ 선봉장 역할이 시간이 갈수록 오바마 전 대통령의 몫으로 굳어지고 있다. 그는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약 1년간 대외 활동을 자제했던 것과 달리, 중간선거를 전후로 거침 없는 비판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시카고대 정치연구소와 CNN방송이 공동 주관한 ‘디 액스 파일스(The Axe Files)’ 팟캐스트 인터뷰에서 미국의 ‘비전’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과는 상반되는 시각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의 독창성은 더 크고, 더 성공적이며, 다인종ㆍ다문화ㆍ다민족ㆍ다종교ㆍ다원적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열망”이라고 말한 뒤, 진행자인 CNN 정치평론가 데이비드 악셀로드가 ‘트럼프와 그 의견을 공유하냐’고 묻자 “명백히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미국을 분열시켰다’는 비판을 받는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한 듯,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 갈라져 있지만, 그렇게 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오바마는 2020년 대선에서 ‘오바마의 비전’이 충분히 승리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와 맞붙으면 이길 수 있나’라는 진행자 질문에 즉답을 피한 그는 “(나의 비전이) 이미 많은 미국인들의 공감을 받고 있으며, 결국엔 (민주당이 트럼프를)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 또 민주당의 차기 대선 후보로 선호하는 인물을 꼽아달라는 주문은 사양했지만, 텍사스주 상원의원 선거에 나서 공화당 현역 테드 크루즈 의원에 석패한 베토 오루케를 거론하면서 “훌륭한 레이스를 펼친 인상적인 청년”이라면서 과거 자신의 모습과 비교하기도 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힘은 위기의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를 구해낸 것에서도 드러났다. 펠로시 의원은 중간선거 후 하원의장에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세대 교체’를 요구하는 당내 반발에 주춤했지만 오바마 전 대통령의 지지선언 이후 사태를 평정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이날 인터뷰에서 “비범한 파트너”라고 인정한 직후 ‘펠로시 반대’ 목소리를 냈던 민주당 중진 브라이언 히긴스(뉴욕) 의원 등 4명이 입장을 철회했다.
부인 미셸 오바마의 자서전 ‘비커밍’ 열풍도 오바마 가문과 트럼프 가문을 대비시키고 있다. 지난 14일 발매된 이 책은 한 주 만에 140만부 이상 팔려 나갔는데, “트럼프를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현 대통령의 행동과 정치적 의제로 많은 미국인들이 자신을 의심하고, 서로를 두려워하게 된 걸 보는 건 괴로웠다” 등 트럼프 비판 문구가 다수 담겨 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2020년 대선 출마설에 미셸은 “절대 공직 출마는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으나, 지난달 한 설문 조사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양자 대결을 벌일 경우 55% 지지율로 승리한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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