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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회 한국출판문화상 예심 저술 학술] 사법농단ㆍ남북화해 등 시대의 문제의식을 무게감 있게 조명

입력
2018.11.23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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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가장 큰 흐름은 사법농단 사태 같은 촛불의 잔향, 그리고 남북 화해 무드였다. 그런 주제들을 무게감 있게 파헤친 책들이 주목받았다. ‘헌법의 이름으로’ ‘을의 민주주의’ ‘한반도 전쟁과 평화’ 같은 책들이 대표적이다. 제주의 예멘 난민 문제를 계기로 우리의 민족주의도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우리 안의 중국인 화교들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한반도 화교사’가 문제작으로 떠올랐다. 전통 철학과 현대철학간 만남을 주선한 ‘동아시아 사유로부터’, 동서양 철학 흐름의 융합을 선보인 ‘세계철학사2’ 같은 책은 앞으로의 저술활동도 기대케 한다는 평을 받았다. ‘그리스 비극 깊이 읽기’는 문학작품으로만 치부되어온 비극을 역사적 시선으로 파고든 문제작으로 꼽혔다. ‘DNA 혁명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크리스퍼 기술에 대한 환호만 넘쳐나는 시대에 윤리적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교육에 대한 고민을 담은 책, 칼 마르크스 출생 200주년을 맞아 마르크스에 대한 무게감 있는 저술이 없었다는 사실은 아쉬운 점으로 꼽혔다.

동아시아 사유로부터

이승종 지음ㆍ동녘 발행

유가부터 들뢰즈까지 동서고금을 횡단하는 대화와 토론을 담았다. 동양의 유교, 불교, 도가 사상과 서양의 비트겐슈타인, 하이데거, 데리다 같은 사상가들의 대화를 주선하며 동서 간 사유의 깊은 교류를 통한 성찰적 인문학을 모색한다.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만남은 국내외 유수의 철학자들과 주고받은 문답과 토론을 거쳐 형이상학적 사유에 그치지 않고 실천 가능성을 탐색하는 데까지 이른다. 통합적이고 실천적인 사유에 매진해온 저자가 사유의 영역을 개척하며 융합의 경계를 해체하려 했던 치열한 기록.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

이삼성 지음ㆍ한길사 발행

북한 핵무장 완성을 다각적인 차원에서 분석하고, 군사적 해법이 갖는 기만성을 명확히 밝혀낸다. 평화적 방법만이 남북관계 해소에 유일하게 타당한 해결책임을 주장한다. 한국의 독자핵무장론이나 전술핵무기 재배치론이 갖는 논리적ㆍ현실적 맹점과 함정들을 지적하고 나아가 북한붕괴론에만 기대는 한반도 통일론이 외면해온 한중관계의 지정학을 심도 있게 논한다. 평화협정 체결이라는 해법에 의한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을 바탕으로 우리가 함께 추구해야 할 동아시아의 미래상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논의를 전개하는 균형외교 지침서.

한반도 화교사

이정희 지음ㆍ동아시아 발행

188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화교사학의 공백을 메운 경전(經典). 이웃이면서도 시야에서 놓치기 쉬운 한반도 화교의 존재를 방대한 문헌 자료와 체계적인 구술 조사를 바탕으로 새롭게 그려낸다. 한중일 경제의 공업, 무역발전의 실태 등 한국 화교의 경제적 현황에서부터 민족과 정치의 사상 관념, 한중일 삼자의 관계영향까지 밝혀낸다. 먹거리, 입을 거리 이야기가 풀어져 나오는 생생한 생활사이면서, 도시화에 따른 근교 채소재배 등 농업 현장과 성당 짓기 등 근대 건축업의 현장을 복원하는 중후한 산업사의 면모도 보여준다.

헌법의 이름으로

양건 지음ㆍ사계절 발행

‘시민혁명-헌정 수립-민주주의로의 이행’으로 이어지는 근대 세계사를 추적하고, 헌법이 반영하고 극복하려 했던 현실을 돌아본다. 1987년 민주헌법 체제가 다시 한 번 변화를 앞두고 있는 지금, 대한민국 헌법을 지탱하고 있는 법논리의 구조를 분석하는 데 힘을 쏟는다. 대통령중심제에 대한 비판, 기본권 확대ㆍ보장과 경제민주화 요구, 토지공개념을 헌법에 명시해야 한다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새로운 헌법에 대한 요구 등을 다루며 헌법이 국민 개인의 일상에서 작동하는 현실의 법임을 밝힌다.

을의 민주주의

진태원 지음ㆍ그린비 발행

대중이 스스로를 자조적으로 부르는 이름이자 약자를 가리키는 대명사로 자리매김한 ‘을’이라는 문제적 주체를 정면으로 다룬다. ‘을’을 정치철학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서구 담론의 논의를 한국 사회의 맥락에서 수용하고 변용하려고 시도한다. 촛불혁명과 세월호 참사 등 제도적·절차적 민주주의가 공고화되는 가운데 점점 더 파괴돼 가는 한국의 공동체의 현실을 진단한다. 위기의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고민하고 새로운 민주주의를 재구성하는 데 ‘을’이라는 새로운 주체의 역할을 고찰한다.

가족과 통치

조은주 지음ㆍ창비 발행

‘인구’ 문제가 국가권력의 근대적 재편과 관련해서 부상했음을 역사적으로 실증한다. 1960~70년대 한국의 가족계획사업이 단지 산아제한이 아니라 자본주의 산업화와 연관된 정상화의 과정으로, 근대적 전업주부와 임금노동자에 대한 관념을 창출하면서 ‘정상가족’의 확립을 도모했다고 설파한다. 박정희 대통령 시기의 권력이 가족을 어떻게 재구성하고 추적함으로써 여전히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비판한다. 가족과 여성 문제를 역사적 관점에서 다루며 젠더 이슈의 심층을 파헤친다.

DNA 혁명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전방욱 지음ㆍ이상북스 발행

혁명적 기술인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의 연구 성과, 사례와 적용 가능성을 통찰하고, 과학과 인간 생명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점을 제공한다. 개미의 행동과학 연구, 매머드의 복제 노력 등 최근의 성과와 함께 변리사, 변호사, 증권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국내외 다양한 크리스퍼 도서가 담지 못한 기술 특허와 규제 논란도 다룬다. 기술의 함의를 다양한 시각에서 조명하면서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윤리 차원에서 숙고하고 법과 제도를 통해 민주 방식으로 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세계철학사 2권

이정우 지음ㆍ길 발행

한국 철학자가 쓴 최초의 세계철학사. 3부작으로 구상한 ‘세계철학사’의 두 번째 책으로 1권 이후 7년 만이다. 서구 편향적인 철학사를 지양하면서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보편적인 시각으로 논한다. 동북아 한자문명권의 유교와 도교, 인도에서 유래해 동아시아로 퍼진 불교를 두루 꿰뚫고 지중해세계의 사상과 비교해 가면서 철학사를 꿰어 간다. 특정 문명과 언어권에 갇혀 있던 반쪽 사유만을 배태했던 기존의 철학사를 극복하고, 동서의 두 개의 철학적 흐름이 역사의 각 단계들에서 서로 동조하면서 철학사를 이뤄왔다고 평가한다.

학살, 그 이후의 삶과 정치

한성훈 지음ㆍ산처럼 발행

학살의 정치가 일제강점기부터 정부 수립, 최근에는 시민에 대한 사찰과 감시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주장한다. 시민을 사찰하는 것은 신원조사와 함께 정치적 반대자를 통제하는 것이며, 공안사범은 정부가 각종 ‘정치사상범’을 관리하는 또 다른 감시체계의 한 유형이자 사상을 통제하는 차별의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에서 밝혀지고 있듯이, 저자는 정보수사기관의 사찰이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님을 주목한다.

그리스 비극 깊이 읽기

최혜영 지음ㆍ푸른역사 발행

문학적 관점에서는 풀리지 않는 고대 그리스 비극의 기원을 서양고대사 전공 학자가 당대의 ‘국제 정세’ 분석까지 포괄하는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한다. 기존 연구가 주로 인물의 성격, 문학적 기법, 철학적 의미에 초점을 맞춘 반면 저자는 비극이 원래 지녔던 정치적·종교적·역사적 맥락에 주목한다. 비극이 한창 공연되던 기원전 5세기 아테네 시민의 눈과 귀는 페르시아 전쟁, 델로스 동맹, 펠로폰네소스 전쟁 등 국가의 운명이 달린 전쟁에 몰려 있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면서 비극 작품이 왜, 어떤 내용으로 탄생했는지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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